단상
나는 걷는 게 좋다. 뚜벅뚜벅 걸으며 주변을 구경할 때면, 그 속도가 나에게 딱 맞아 편안하다. 운전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등의 속도감 있는 행위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겁이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그 속도와 함께 쌩쌩 지나가는 세상과 관계 맺을 수 없다는 아쉬움 때문이기도 하다.
다큐 프로그램에서 오체투지를 하며 순례길을 걷는 티벳 사람들을 봤다. 몸이 바닥에 닿는 부분에 튼튼한 가죽을 덧댔지만 오랜 시간 같은 행위를 반복하다 보니까 여러 번 수선해야 했다. 두꺼운 가죽이 헤질 만큼 수없이 온 몸을 땅에 댈 때마나 그들은 무엇을 기도했을까?
순례는 특정한 종교의 행위가 아닌 듯하다. 다양한 이유로 멀리 다른 나라의 순례길을 걷거나 우리나라의 둘레길, 올레길 등 아름다운 이름이 붙은 길들을 찾아서 걷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나는 마음이 불안하거나 복잡할 때 집 근처의 산책로를 따라서 발바닥으로 꾹꾹 도장 찍듯 걷는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는다.
돌 무렵, 첫 걸음마의 경험은 존재에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중력의 반대 방향으로 발을 들어 올렸다가 바닥에 닿는 순간 느낀 단단함, 안전함 말이다.
어쩌면 모든 순례 행위는 그 첫 번째 신뢰를 반복하여 체험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