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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정은 Aug 10. 2022

화가라는 직업

그림 이야기


학생을 가르치는 일이든, 환자를 치료하는 일이든, 무언가를 고치는 일이든 세상의 일들은 저마다 사회가 부여한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과 직업을 별로 궁금해 하지 않는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화가로 생활을 시작할 무렵 작업실에 있으면 세상에 속하지 않은 듯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막막함 속에서 질문했다. “나는 뭐 하는 사람이지?”, “그림 그리는 일은 무슨 쓸모가 있지?”, “그림 그리기를 그만두면 어떻게 되지?”

지금에 와서야 그 질문들이 가진 막강한 힘을 알았다. 질문은 네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찍는 행위였다.


연금술사들이 잡철을 금으로 만들기 위해 플라스크에 넣고 밀봉하듯이, 존재의 변환 과정에서 고립은 꼭 필요하다.

원하든 그렇지 않든 사회가 부여한 의미들은 차곡차곡 쌓여 나의 세상을 만들었다. 모양새가 마음에 들지 않고 불편해도 밖은 천길 낭떨어지라도 되는 듯 벗어날 엄두를 못 냈다. 그런데 뜻밖에도 무가치함에 젖어들던 시간은 공고한 기존의 세계에 조금씩 균열을 내고 있었다. 없으면 죽을 거 같던 것들이 차례차례 사그라들었지만, 나는 그대로 존재했다.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결국 자유라는 가치와 만난다. 자유롭고 싶은 강한 욕망 덕분에 약하고 민감한 자아를 가진 예술가들이 한 시대와 사회의 관념이라는 벽을 훌쩍 뛰어넘을 수 있다.

화가는 텅 빈 공간에서 새로운 의미를 길어 올리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이 직업이 좋다.


<닭28>   128x112   혼합재료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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