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이야기
나에게 아이디어는 원석 같은 모습으로 찾아온다. 예전에는 그것이 주는 무게감 때문에 겁먹고 서둘러 통과하려고만 했는데, 이제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견디며 “이번에는 어떤 보석이 들어있나?”하고 호기심을 갖는다.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묵묵히 지켜보는 것이다. 그러면 덩어리에 균열이 가며 모티브들이 맥락 없이 툭툭 떨어지는데, 마음속에 방을 여러 개 만들고 그 조각들을 하나씩 넣어둔다.
이것을 주로 마음에서 먼저 진행하는 이유는 모티브들을 마음껏 변신시키기 위해서이다. 말도 안 되는 장면도 얼마든지 가능한 꿈처럼 의도적으로 백일몽의 상태에 젖어들어 상상놀이를 한다.
신기하게도 마음의 스케치북은 사용할수록 용량도 늘어나고 화질도 선명해지고 기능도 업그레이드된다. 물론 드로잉북이나 컴퓨터 기기도 쓰는데, 주로 흐리멍텅 할 때 손을 놀려 의식의 순환을 돕거나, 아이디어가 구체화 된 후 현실적으로 어디까지 표현할 수 있을지 가늠할 때이다.
모색은 놀이이다. 어떤 색에 꽂히거나 독특한 기법이 떠오르면 그것을 들고 마음속의 이 방 저 방을 돌아다니며 인형 옷을 입히듯이 모티브들에게 적용시켜본다.
주의할 점은 막힐 때 너무 애쓰지 않고 멈추는 것이다. 힘들었던 기억은 나도 모르게 그 상태를 회피하게 만든다. 관심과 무관심의 리듬을 타며 의식과 무의식의 콜라보를 따르는 게 현명하다. 재미있어야 계속 놀 수 있다.
이와 같은 과정을 반복하면 어떤 것들은 1%가 부족해서 수도 없이 변형되기만 하고, 어떤 것들은 결국 버려지기도 하고, 어떤 것들은 드디어 작품으로 탄생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