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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정은 Sep 03. 2022

슬럼프1

그림 이야기

누군가 말했던 ‘반성적 휴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긴 시간 동안 나는 몸도 마음도 텅 빈 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런 시간이 길어질수록 초조함은 더해갔고, 나중에는 마치 그림 그리는 법을 영영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절망하기도 했다.


버석해진 가슴을 적실 감성, 그것을 길어 올릴 마중물을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리기도 하고, 게으름 탓으로 돌리며 억지로 붓을 들어보기도 하고, 괜찮다 괜찮다하며 나를 달래보기도 하고, 하염없이 웅크리고 있기도 하고, 그런 시간들이 힘들어서 내가 화가라는 사실을 외면하려고도 했다.


그러다 어느 때부터인가 다시, 서서히, 촉촉한 기운이 스미더니 한순간 그것은 작은 물웅덩이가 되었다. 그리고 번져나가는 물결들…….

거짓말같이 닫혀버린 창작의 문 앞에서 망연했던 것처럼, 나는 다시 열린 그 문 앞에서 묘한 무력감을 느낀다. 


겨울의 호수가 얼어붙지 않도록 끊임없이 둥글게 헤엄치며 결국 봄을 맞이한 미운오리새끼 이야기도 생각나고, 크림 통에 빠졌지만 포기하지 않고 허우적거린 덕분에 크림이 버터가 되어 살아남은 생쥐의 모습도 떠오른다.


<고양이2>   50M   혼합재료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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