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이야기
<슬럼프1>은 5년 동안의 슬럼프를 겪은 후 다시 전시를 하게 됐을 때 쓴 글이다.
그 시간이 혹독했던지 요즘도 작업이 풀리지 않으면 혹시 긴 터널의 입구에 선 것은 아닐까 하며 나도 모르게 긴장한다.
예술가의 인생에서 슬럼프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과정이기 때문에 그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하다.
인간의 제한된 오감은 창조의 모든 과정을 인식할 수 없어서 겨울 같은 계절은 마치 세상이 멈춘 듯 보인다. 땅 밑에서 여전히 왕성하게 진행 중이지만 말이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성과물만을 창조라고 여기면 그렇지 못한 나머지의 시간을 어쩔 수없이 힘들게 보내야 한다.
크고 작은 슬럼프를 겪으며 알았다. 창작하려면 해체와 휴식의 시간 또한 겪어야 한다는 것을, 골짜기가 깊을수록 산도 높다는 것을, 모든 일들처럼 슬럼프도 자신의 역할을 다 하고 나면 지나간다는 것을.
문제는 저항이다. 그냥 과정을 믿고 맡기는 게 되지 않는 이유를 깊이 들어다보면 결국 유한한 인생을 사는 인간의 실존적 불안과 만난다. 하지만 초조한 마음에 서둘러 땅을 파고 준비도 안 된 싹을 끌어내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지나가고 있는 슬럼프의 뒷덜미를 붙잡아 연장시킨다.
또 한 가지, 슬럼프를 겪을 때 마음껏 딴 짓을 하거나 편히 쉬지 못하는 이유는 <개미와 베짱이>의 동화가 어른이 된 후에도 여전히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빈둥거림, 게으름은 나쁘다고 배운 탓에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노는 시간이 길어지면 슬며시 눈치를 본다.
그래서 쉼은 연습이 필요하다. 특히 창작을 하는 예술가들에게 깊은 휴식은 몸뿐만 아니라 영혼에게도 보약 같은 시간이다.
여전히 슬럼프를 지나는 게 녹록치 않지만, 이제 나를 다독일 몇 가지 문장이 생겼다.
“곧 탐스러운 열매가 달리겠구나.”하며 기대하기.
“이런 것도 다 내가 살아있기 때문에 겪는 거야.”하며 통 크게 받아들이기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