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을 돌아보며, 한해의 총정리
1년에 딱 한 번, 연말에만 찾아오는 클로징의 시간이다.
‘올해의 나는 어땠을까.’
이 질문을 나 자신에게 던져볼 수 있는 날.
1993년생. 인생으로 치면 이제 33회차.
회사원 8년 차, 지금 몸담고 있는 다국적 기업은 3년 차.
요즘의 나는 하루의 루틴, 그리고 한 해의 루틴이 조금씩 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시기에 와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더더욱, 33회차의 올해 마무리를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어떤 기억이 가장 즐거웠는지,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조금 더 자랐는지.
이 시간만큼은 꼭 한 번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그리고 매해 연말, 이런 시간을 연 1회는 반드시 갖자고
나 스스로에게 다시 다짐해본다.
올해 가장 선명하게 남은 기억은
역시 해외 학회 출장이다.
2월 초, 출산 이후 첫 장기 해외 출장. 미국 샌디에고까지 7박.
회사에서 나 홀로 떠나는 일정이었다.
첫 비즈니스석이라는 작은 행운까지 더해져
괜히 더 호기롭게,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출발했다.
샌디에고 공항에 처음 내려 호텔로 향하던 그 길.
해안 도시 특유의 바이브, 미쿡적인 공기,
택시 기사님과 이어가던 간만의 영어 대화까지.
지금도 꽤 생생하다.
토요일 도착이었고, 첫날은 주말이었다.
추천받은 다운타운 스트릿으로 저녁에 혼자 나갔다.
생전 처음 가본 피아노 바.
자유로운 재즈 피아노 공연,
사람들의 흥,
그리고 갱 스트릿 같은 느낌이 조금 있어서
오고 가는 길이 살짝 무섭기도 했던 밤.
둘째 날부터 한국에서 알던 반가운 교수님들이 한 분, 두 분씩 도착하기 시작했다.
타지에서 느끼는 반가움은 한국에서와는 또 다른 결이었다.
자연스럽게 교수님들을 챙기게 되었고, 그 챙김을 또 반갑게 좋아해 주셨다.
그렇게 우리는 어느새 가족처럼 함께 움직였고, 거의 4일 스케줄을 공유하고 함께 보내며
매일 저녁을 즐겁게 마무리했다.
그때의 기억은 나에게 굉장히 큰 자산이 되었다.
한국에서 다시 뵐 때마다 교수님들이 그때 이야기를 꺼내 주실 때면,
아, 그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구나 싶었다.
타지에서 쌓은 라포는 확실히 다른 온도로 남는다.
8월의 교토 학회는 또 다른 종류의 기억이었다.
이번에는 마케팅, 세일즈 파트너들과 함께한 출장.
첫째 날, 둘째 날은 같이 온 직원들과 시간을 많이 보냈다.
도시를 함께 걷고, 카페를 가고, 저녁을 먹고,
늦은 밤에는 이색적인 바에도 들렀다.
평소에는 쉽게 꺼내지 못할 조금 더 속 깊은 고민과 이야기들을
터놓고 나누던 시간. 그 시간이 유난히 오래 남는다.
저녁마다 글로벌 동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맥주를 마시던 시간.
간단한 한국말을 알려주고, “진쫘?”를 고개까지 한쪽으로 젖히며 똑같이 따라 하던 헤드 동료.
내가 웃으면서 옆 사람을 툭툭 치는 습관을 “한국 문화”라고 우기다가,
옆 동료가 너무 아프다며 웃다가 울던 기억도 있다.
일본 세일즈·마케팅 팀과의 저녁 자리에서는 별거 아닌 이야기에도
바디 랭귀지로 빵빵 터지던 웃음이 이어졌다.
교토 학회는 고객들과의 깊이 있는 추억보다는,
여러 팀의 동료들과 좋은 추억들을 쌓을 수 있었던 시간으로 남았다.
그래서인지 9월 창원 학회장에서 잠깐 짬이 나서
교수님이 데려가주신 창원 카페거리를 걸으며 아쉬움을 달래던 시간이
유난히 따뜻하게 기억에 남았다.
물론, 그 모든 일정에는 대가도 있었다.
7박의 샌디에고 학회를 소화하며 5일차경에 처음으로 겪어본 향수병.
짠하게 보고 싶어지던 아들래미. 물갈이로 인한 피부 발진.
그리고 9월, 지방 출장까지 계속 이어가며 겪은 첫 대상포진.
그것도 귀 쪽이라 하마터면 안면신경까지 퍼질 뻔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기억에 남을만한 추억을 쌓으려면 이제는 어느 정도의 건강 손실은 각오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이게 나이 들어간다는 상징인 것일까. (ㅠㅠ)
그래도 돌아보면, 나는 최선을 다해 즐겼고 아쉬움을 남기지 않았다.
그 시간들은 분명 나에게 소중한 자산으로 남았다.
올해 내가 가장 크게 배운 것은
조금 더 나에게 집중하는 법이었다.
일정한 루틴을 만들고,
그 루틴을 지켜나가고,
말수를 줄이려고 노력하는 것.
독서와 운동,
그리고 팟캐스트 리스닝. (나에게는 거의 명상에 가깝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듣고,
출근길에는 읽고,
퇴근길에는 쓰고,
저녁에는 몸을 움직이는 것.
어차피 인생은 결국 독고다이다.
가족도, 남편도, 아들도
결국엔 각자의 인생을 산다.
그래서 남들과 비교하고,
남들의 이야기에 신경 쓸
시간과 에너지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
특히 남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것을 더 깨닫는다.
굳이 내 입으로 꺼낼 이유도 없다.
최근 많이 듣고 읽고 있는 작가
로버트 그린의 말처럼,
"다른 사람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언행은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는 점을
항상 기억하고 싶다.
내년은 또 어떤 한 해가 펼쳐질까.
부사장님의 퇴사로 회사에서의 독립성은 조금 더 커졌고,
새로운 변화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분명하다.
그 변화들 속에서
외부를 향한 시선은 줄이고,
나의 성장과 커리어에
조금 더 집중하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사이드로 네트워킹도 신경 쓰길.
내가 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대신해주지 않는다.
부족하더라도 글쓰기를 지속하길.
10년 후의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를 떠올리며
미리 계획해보길.
계획대로 되지 않더라도
더 좋은 길이 있을 것임을,
결국 다 잘 될 것임을
꼭 기억하길.
사람에 대한 의존과 기대는 최소화하고,
나 자신에게 더욱 집중하길.
33회차의 나, 잘 버텼고 충분히 즐거웠다.
그리고 34회차의 나도, 분명 잘 해낼 것이고 더 즐거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