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학교와 도시학교
2년째 장거리 출퇴근 중이다.
가정의 경제적 상황으로 인해 내가 힘든 출퇴근을 떠안게 됐다.
결과적으로는 그렇다.
장거리 출퇴근을 하는 장점은, 회사에서 배려를 받는다.
근데 이제 아이들이 커간다.
내년이면 초등학교 2,3학년.
언제까지 시골학교에 다니게 둘 수 있을까?
같이 다니는 학부모 말처럼 아이는 어떻게든 자라게 되어있고 이런 고민들은 모두 의미없는 아주 작은 먼지같은 것들에 불과할까?
회사 상사는 그렇지 않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아이가 바보가 되고 부족한 아이 따라하게 되는 '하향평준화'가 일어나니, 늦어도 내년에는 꼭 아이들을 데리고 다녀야 한다고 힘을 주어 말했다.
나는 어떻게 해야만 할까?
상사는 내게 '좋은 차'를 사서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라고 하지만, 집도 없는 내가 '좋은 차'를 사는 것이 가당키나한 일이며 과연 그렇게까지 아이들을 도시유학을 시켜야할까.
아이는 스마트폰 없는 청정한 지역에서 학교생활을 잘 하고 있다.
아직은 어리다. 그렇지만 과연 1년뒤, 2년뒤에도 그럴까.
계산기를 두드린다.
1년은 시골학교, 그 이후 1년은 도시 등하교를 통한 도시 유학, 그 이후에는 도시로 이사할수있을까?
우리는 왜 밀려났을까.
계획이 들어맞아 가지고 있는 부동산을 처분할 수 있게되면 (아주아주 힘든 조건들이 들어맞아야만 하지만.) 그러면 우리는 1억 전후의 대출을 받아 도시로 이사를 갈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전세로 집에 들어가서 살다가, 그 도시에서 영원히(이 단어의 뜻은 무엇일까) 살게 되는 걸까.
거주지란 무엇일까.
거주 가치란 무엇일까.
회식을 하며 동료들과 동네에서 술한잔 마시고 택시로 집에 들어갈 수 있는 가치.
아이가 내가 케어하지 않아도 스스로 걸어서 집으로 들어갈 수 있는 가치.
아이의 적성에 맞으면서도, 안전하고 세심한 케어를 주는 학원을 고를 수 있는 가치.
극소수의 교우관계가 아니라, 같은 나잇대의 친구들을 넘치게 만나볼 수 있는 가치.
나보다 뛰어나거나, 나와 너무 맞지 않거나, 아주 포악한 친구와도 만나볼 수 있는 가치.
충분한 시간을 두고 수업을 위해 고민하는 선생님을 만나 볼 수 있는 가치.
그 가치가 90분 등하교의 시간을 넘어설 수 있을까.
나는 어떤 선택을 하여야 할까.
내게 많은 돈이 있다고 해도 나는 이 곳을 떠나는 것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아이를 기르는 일은 많은 산을 넘어도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누구도 단언할 수 없는 영역의 것은 아닐까?
아이를 사랑하는 만큼, 아니 내가 욕심을 부리는 만큼, 고민과 걱정이 깊어가는 새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