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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의 무의식 속에 나는 죽은 사람이다.

'어른아이'는 바로 나였다.

by 민용

나는 항상 부모님, 그중에서도 엄마에게 "장한 딸"이었다.

엄마는 30년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너무나 대단하고 대견한 딸로 나를 치켜세워주는 마법사 같은 사람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엄마는 나의 유일한 창이었다. (부끄럽게도) 지금도 그러하다.

항상 기분좋은 햇볕이 드는 창.

나는 그 햇볕을 받으며 자라나는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라왔다.

엄마는 나의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들을 결정했다.

고등학교, 학원, 대학교, 거주지를 선택하여 계획했고 나는 항상 그에 맞게 살아갔다.

엄마의 결정에 맞게 사는 것이 "선"이라고 믿고 자랐다.

그런 나에게도 엄마의 결정에 반하는 꿈을 가졌던 때가 있다.

때는 2010년 중반, 루미나리에가 전국적으로 유행이었고 조명이 건축의 중요한 요소로서 혹은 예술작품으로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2018121615391665277_m.jpg 루미나리에 (출처 : 매일신문)


나는 동성로의 루미나리에 거리를 걸으며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고 환희에 차올랐다.

전구가 내는 빛의 환상에 젖어있던 열여덟의 어느 날 나는 우연히 건축물에 조명을 설치하는 작업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시청했다.

루미나리에처럼 일시적으로 반짝이는 설치물이 아니라 궁궐, 빌딩, 다리, 카페 등 여러 건축물에 조명을 설치하여 밤이 되면 낮보다 더 아름다운 건축물이 되도록 하는 조명디자이너에 관한 다큐멘터리였고 원래도 고궁이나 절을 좋아하던 나는 건축물의 빛이 루미나리에의 빛보다 더 설렜다.

나는 내가 찾던 직업을 찾았다고 확신했다.

당연히 베스트프렌드이자 내 모든 선택의 결정의 결재자인 엄마에게 흥분을 토하며 공감을 구했다.

그러나 그녀는 단호했다. 평소처럼 나의 감탄과 감정에 공감해주지 않았다.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 일"은 길을 스스로 개척해야하기 때문에 힘들고 어려운 일이니까 너에게 허락할 수 없다고.

안정된 일을 하라고.

나는 몇 번 엄마를 설득하려 했지만 결국 설득당한건 나였다.

내 인생을 결정할 권력을 그녀에게 내어주는 순간이었다.

그런 패턴은 반복되었다.

대학교 원서, 임용시험, 결혼, 임용 재도전, 나의 자녀 계획에 이르기까지....

엄마의 말과 인정은 연료처럼 기능했지만 나는 결국 그 연료가 아니고서는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달콤한 연료에 길들여진 나는 내가 내 결정을 스스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여기까지 이야기하자,

남편은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볼 수는 없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엄마 덕분에 부족하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었고 더 좋은 선택을 했다고 볼 수도 있지 않냐고.

그럴지도 모른다.


그런데 몇일 전 여동생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내 여동생은 정신분석을 공부한다.

여동생이 몇달전 꿈을 꿨는데 너무 강렬해서 가족들 모두에게 들려주었다.

내용은 아래와 같다.


여동생은 엄마아빠와 딸기밭에서 딸기를 따고 있었다. 여동생은 딸기를 따다가 햄스터를 발견해서 바구니에 딸기와 함께 넣었다. 딸기를 다 딴 후 엄마가 딸기를 씻어야 한다며 바구니를 물항아리에 넣길래 동생은 바구니에 햄스터가 있으니 물에 넣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아빠는 괜찮다며 동생의 바구니를 물에 넣어버렸고 엄마도 방관하여 여동생은 결국 어쩌지 못했다. 여동생이 뒤늦게 바구니를 꺼내 딸기를 바닥에 쏟아놓고 안을 확인하였으나 큰 햄스터는 이미 죽어있었고 작은 햄스터만 겨우 살아있었다. 여동생은 속상한 마음에 펑펑 울었다.


꿈 이야기를 듣고 오묘하고 섬뜩한 꿈이라는 생각을 했다.

여동생도 그렇게 느꼈으리라. 그래서 이 꿈을 스마트폰에 기록하고 가족들에게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왔으리라.

뭔가 의미가 있을 수도 있으나 나는 그저 무의미한 그런 꿈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 여동생은 꿈과 관련된 워크숍에 참석했고 이 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꿈 분석을 받았다.

그러면서 알게된 충격적인 사실은 큰 햄스터가 다름 아닌 '나' 라는 분석이었다.

그리고 작은 햄스터는 남동생.

우리 삼남매는 부모님의 다소 독선적인 진로 간섭에 각기 다르게 반응하였다.

장녀인 나는 앞서 말했듯 부모님의 말에 거의 100% 따랐다. 입학한 지 몇 달 만에 교생실습을 통해 내가 아무 생각없이 부모님의 뜻에 따라 교육대학교에 온 것을 후회하였으나 수능 성적을 더 높게 받아서 어딘가로 가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을 깊게 하지 않았고 결국 임용시험을 치러 교사가 되었다.

여동생은 나보다 수능 점수가 조금 모자랐는데 첫 대학때는 아빠의 진로 조언을 따라 국립대 이공계열로 진학하였다. 그러나 졸업 전까지 매학기 시험을 전쟁처럼 치르면서 본인이 현재 학과 공부가 적성에 맞지도 않고 흥미도 없으며 더구나 경쟁력이 심하게 떨어지는 것을 느끼며 자괴감에 젖기도 하였다. 그 과정에서 반드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다짐하고 심리책과 심리학 공부를 조금 해보면서 추후 졸업하고 나서는 부모님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학사와는 완전히 무관한 심리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원에서는 오히려 심리학과 학사 졸업생들 사이에서도 두각을 드러내며 우수하게 석사 졸업을 하였고 원하는 자리에 취업까지 성공하였다. 이후로 관련 논문을 꾸준히 쓰고 이제는 정신분석까지 공부하고 있다.

한편 남동생은 여동생보다도 수능 성적이 좋지 않아 국립대학은 가지 못하였으나 여동생이나 나와 같이 첫 대학은 아빠의 진로 조언에 따랐다. 그러나 한달도 되지 않아 적성과 흥미 모두 전혀 맞지 않음을 크게 느끼고 나에게도 도움을 구했다. 결국 첫 대학교는 자퇴하였고 재수를 시도했으나 부모님은 재수 중 계속해서 취업이 보장되는 간호대학을 강요했고 그래서 였을지 남동생은 공부에 집중 하지 못했다. 결국 남동생은 첫 수능보다 낮은 점수로 간호대학에 입학하였고 한 학기 후 휴학을 하였다. 그리고 집을 떠났다. 현재 집을 떠난지 11년이 되었다.


여동생은 엄마 아빠의 반대 속에서도 스스로가 원하는 바를 찾고자 꾸준히 노력하여 성취했고 이제 부모님은 그녀를 자랑스러워한다. 그런 그녀의 꿈 속에서 나는 '죽은 햄스터'로, 남동생은 '겨우 살아있는 햄스터'로 상징되어 나타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여동생의 무의식에서 나는 이미 죽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남동생은 겨우 살아서 도망친 사람 정도일 것이다.


나는 이 꿈 분석을 듣고 나서 급심한 정신적 고통을 느꼈다.

내 동생은 나의 분신같은 사람이다.

그건, 그 아이가 나와 아주 닮아서이기도 하지만 그녀를 통해 살아있는 내가 좋았다.

그녀는 나의 소통 창구였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 중 하나다.

아마도 내 자식들 만큼 사랑하는 유일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런 여동생에게 나는 죽은 사람이라니.

내가 이토록 괴로운 이유는 나도 아직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글을 쓰고 있다.


추측해보자면 아마도 "여동생"에게 내가 죽은 사람이라는 것이 고통스러운 것일수도 있다. 동생에게 언니인 내가 그렇게 비춰진다는 것. 자존심이 상하고 억울하다. 내가 부모님의 욕구를 충족해주었기에 둘째인 너는 그렇게 살 수 있었다고 고마워하라고 말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여동생을 자랑스럽고 멋지게 생각하는 반면 그녀에게 나는 답답하고 의존적인 존재로 보여진다는 콤플렉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또 다른 측면으로는 나 또한 내가 그렇게 생각되기 때문에 가슴 아프다. 나도 내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다.

유행드라마의 대사처럼 나도 여전히 내가 애틋하고 잘 되길 바란다. 나도 너처럼 내 스스로 원하는 곳을 개척하고 걸어갈 수 있는 용기를 가지지 못했던 것이 안타깝고 내 자신에게 미안하다. 넘어질 지언정, 다시 교육대학으로 돌아갔을 지언정 왜 내가 원하는 조명디자인을 공부하지 않았는지 과거의 나에게 따져 묻고 싶다. 왜 내가 여동생에게 죽은 사람 받을 정도로 답답하게 살아왔는지. 왜 남편에게 결정권을 주고 내가 원하는 여행이나 공부를 하지 않았는지. 휴직하면서 발전할 수 있는 시간들이 주어졌음에도 왜 게으르고 나태하게 살았던 것인지. 그런 내면의 말들이 나를 생채기 내었던 것이다.


인정할건 인정해야 한다.

부모님 덕분에 지금 월급 꼬박꼬박 받으며 결코 남부럽지 않게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음을.

그러나 또 격하게 인정해야 할 부분은 나의 나태함이다.

나태하여 조금씩 주어지는 시간들을 금같이 사용하지 않고 소비하며 살아왔다.

그리하여 내가 나아갈 수 있는 길들을 닦을 수 없었다.

서른 여덟. 결코 어린 나이가 아니지만, 여동생의 이 뼈 때리는 꿈을 통해 나는 좀더 언니답게 거듭나야하는것 아닐까.

나에게는 아직 엄마나 남편의 결정이 너무 큰 지분을 차지 하고 있지만 내 스스로 결정하여 성취하고 책임지는 일들을 조금씩 늘려가야한다는 메세지가 아닐까.

더 늦기 전에 말이다.


최근 <'어른 아이'를 만드는 사회>라는 책을 읽었는데 작은 출판사에서 나온 책인듯하다.

그러나 책 내용이 깊이가 있고 현실과 닿아있어 2회차정독 중인데,

책 속에 나오는 '어른 아이'가 다름 아닌 내가 아닌가 한다.

아니, 내가 아니었던가 한다.

동생은 내가 이제는 어른으로 세상 앞으로 나와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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