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1년차 워킹맘 혼자 여행을 떠났다

남편과 아이들 없는 나홀로 여행

by 민용

혼자 여행을 간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왠지 더 긴장되고 설레는 것은 누구도 챙길 사람 없고, 오로지 나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는지만 바라보면 되는 여행이 너무나 오랜만이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이를 낳은 후로는 처음 떠나는 혼자 여행이었기 때문이었다.

최근 남편의 욕구가 나의 삶을 지배하는 것을 점점 의식하고 있었다.

정신분석학자 라깡에 따르면 여성은 태어나기를 히스테리증자로 태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스스로가 무엇을 욕구하는지 알려고 하기보다, 남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싶어 하며 결국 가장 가까운 사람인 엄마 혹은 남편의 욕망을 실현하면서 인정받기를 갈구하고 거기서 만족감을 얻는다는 것이다.

또는 그 대상들을 끝없이 증오하고 미워하는 언어를 발화하며 그 자체로 쾌락을 얻는다고도 했다.

나는 라깡을 다룬 책들을 읽으며 전율함과 동시에 괴로웠다.

모두가 너무 나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남편은 내가 여행을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더욱이 친구와 가는 것도 아니고 혼자 간다고 하니 당연히 반기지 않을 터였다.

몇번이고 누구 집에 가라는둥, 친정에 가서 자고 오라는 둥 다른 방향으로 나를 돌리려 하였다.

하지만 나는 혼자여야 했다.

남편이 그것을 더욱 원치 않는 것을 알기에 나는 혼자 가여야 했다.

그리고 드디어 떠났다.

사실 해놓은 일이라고는 남편의 동의를 얻은 것과 숙소를 예약한 것 두가지 뿐이었다.

나는 여행을 워낙 좋아하기에 여행 가기 전부터 여행 세포들이 나를 지배한다.

여행 스케줄, 여행지의 맛집들, 필요한 짐의 목록 등등. 하지만 이번 여행은 여행 세포는 여행 1시간 전까지도 깨어나지 못했다.

그 전날까지 여행지에 대한 생각은 커녕 아이와 투닥거리고 아이 공부를 봐주고 집안일을 하였다. 아니, 여행을 떠나는 당일까지도 히스테리증자 답게 엄마로써 아이들을 등교시킨 후 된장찌개를 한솥 끓이고, 읽을 책을 빌려다 두고, 설거지를 하고 김밥도 사두는 등 남편이 원하는 여성상으로서 최선을 다한 후 떠났다. 그랬기에 나는 네비게이션에 숙소를 입력하고 시동을 걸어 <김약국의 딸들>을 재생하기 전까지만 해도 여행의 실감을 못했던 것이다.


나의 욕구를 찾는 첫 여행지는 통영이었다.

통영이어야 했다.


가족끼리 4년 전 쯤 통영을 간적이있었다. 이번과 같은 2박 3일의 여정이었고, 여행세포는 일찍이 깨어있었기에 열심히 갈 곳들을 찾았다. 그중 봉수길은 유난히 특별했다. <전혁림 미술관>, <봄날의 책방> 그리고 근처의 잊을 수 없는 카페. 그 세곳 에서의 기억에 너무나 나의 욕구와 들어맞았고 오래오래 머물고 싶었고 아이들도 행복해했다. 그날은 비가 기분 좋게 따뜻한 날씨를 적시고 있었고 미술관은 소박하지만 다채로웠으며 책방의 색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따뜻했다. 나는 그 곳을 꼭 다시 가고 싶었다. 두달도 더 전에 예약한 숙소였으나, 그 곳들과 가까운 곳을 하고 싶었었나보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랬기에 미술관 근처의 숙소로 예약했으리라. 숙소는 더할 수 없이 좋아서 사실은 원래 가고 싶었던 미술관과 책방보다 게스트하우스가 더 좋은 기억으로 대체되었다.


또 다르게는 좋아하는 작가인 김영하가 나왔던 프로그램인 <알쓸신잡> 최초의 여행지가 통영이었다. 그 에피소드가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기도 했다. 김영하는 그 프로그램에 관하여 에세이 속 한 꼭지를 쓰기도 하였는데 그 서술도 어찌나 탄력이 있는지 매번 감탄하게 되는 작가다. 그는 통영으로 가는 전세버스 안에서 모두가 잠들어 있을 때 혼자 책을 읽었는데 그 책이 박경리 작가의 <김약국의 딸들>이었다. 빅경리는 <토지>로 유명한 작가인데 사실 한 번도 그 전설적인 작가의 책을 읽어보려고 시도한 적이 없었더랬다. 그러나 알쓸신잡에서 이야기하는 박경리의 이야기는 흥미로웠고, 또 친근하게 다가왔다.(이것이 미디어의 힘인가) 김영하는 통영을 가는데, 통영을 배경으로 한 통영의 작가 박경리의 책을 읽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고 나는 꼭 <김약국의 딸들>을 읽으리라 다짐하였던 것이다. 다행히 나의 독서를 도와주는 '윌라'라는 21세기 독서의 편리한 도구가 있어 3시간의 통영행은 너무나 즐거웠다. <김약국의 딸들>을 20%정도 들으니 통영의 해안가를 드디어 눈으로 마주할 수 있었다.



나는 비로소 여행을 온것을 실감했고 뒤에서 빵빵 거리는 것도 모르고 속도를 늦추다가 비상등을 넣어 양해를 구한 후 통영의 해안가에 차를 대었다. 한달에 한번은 가게 되는 동해의 날렵하며 검푸른 바다 풍경과는 대조적으로 통영의 그것은 정돈되지 않은채 많은 것들이 흩어져있었다. 각양각색의 배들과 올록볼록한 해안선, 들쑥날쑥한 대지 까지. 통영은 자유롭고 더럽지만 아름다운, 원초적인 인간의 욕구가 분출될 수 있는 곳이었다.


금요일 오후 4시. 숙소 통_머물다 에 도착

_애옹

주차하여 운전석 문을 열자마자, 한 애옹이가 나를 불렀다.

애옹이는 갈색 줄무늬 길냥이였다. 그 아이는 내가 오자 마자 나를 불렀는데, 이 아이를 매일 만나게 되었고 체크아웃하고 떠나는 그 순간에도 나에게 끝까지 애옹하고 인사해주었다.

어떤 듯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것이 인사로 느껴졌고, 통영의 길냥이들은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되었다.

숙소는 아늑했다. 기억속 책방 만큼 아니 그보다 더 아늑한 곳이었다.

방바닥은 따끈따끈했고 창문은 앙증스러웠다. 이곳에서 나는 3일동안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글도 쓰고, 그림도 그렸다. 한달넘게 전폐한 그림을 한평 남짓한 공간에서 다시 그렸다는것이 신기하다.

나는 나의 친구인 가습기를 놓고 짐을 푼 후 곧장 책방으로 향했다. 미술관 옆 책방이었지만 미술관은 닫기 30분 전이었고, 책방은 내가 통영으로 온 이유였다. 살금살금 걸으며 봉수골 구석구석을 눈으로 익혔다. 그 재미는 여행에서 절대 놓칠 수 없는 것이다. 숙소 근처를 산책하는 것. 나는 평소에 산책을 즐기는 편은 아니다. 생각해보면 이사 온 직후에는 즐기는 듯도 한데, 익숙해져버리면 주변 풍경은 등한시하게 된다. 그 이유는 차차 생각해보기로 하고, 봉숫골에서 책방은 불과 500m 정도 거리였고 날씨는 추웠지만 마음만은 훈훈하게 책방으로 들어선 나는 새삼 추억에 잠기며 책방의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킁킁 냄새를 맡았다. 책방은 변함없이 따뜻했고 나를 반겨주는 듯 했다. 뭔가를 사고 싶어 기웃기웃했지만 마음에 쏙 들어오는 책을 찾지못해 나왔다. 그리고 사실 배가 고팠다.

숙소 사장님이 추천해준 식당을 스마트폰으로 찾아보니 바로 옆에 유명한 텐동 가게가 있었다.

나는 텐동이라는 음식을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었지만, 꼭 그곳을 가고 싶었다.


4시 55분. 니지텐 입장

식당 이름은 니지텐이었는데 한자로는 두글자였다. 일어는 잘 모르지만 일본에 온 착각이 들기도 했다.

음식은 정말 정말 맛있었다. 최근에 먹은 음식 중 기억나는한 최고로 맛있는 음식이었다.

그래서 입 안쪽이 튀김에 상처가 나는 줄도 모르고 먹었다.

영상을 틀거나, 윌라를 틀지 않고 오로지 음식에 집중하여 식사를 한것이 얼마만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내가 텐동그릇에서 튀김을 주워먹고 있으니, 직원분이 튀김을 앞접시에 옮긴 후 계란과 밥과 간장을 알맞게 섞어 먹으라며 가르쳐주었다. 감사했다.

김영하는 말했다. 여행을 가는 이유는, 낯선 곳에서도 내가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또 다시 하기 위해서라고.

통영 분들은 그렇게 나에게 하나하나 친절히 가르쳐주셨다.

나는 그 따뜻하고 바삭바삭한 텐동이라는 음식을 통영에 와서 처음 먹었고 감동은 저릿저릿하였다.


2편에 계속


작가의 이전글장거리 출퇴근 그리고 장거리 등하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