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살의 신> 해석과 가식에 대하여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 마주할 가면의 수가 하나 늘어가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직장 상사 앞에서와 친한 친구들을 만났을 때, 가족들 앞에서의 얼굴이 모두 다르듯 말이다. 이런 사회적인 가면은 아주 중요하다. 때론 자신을 지켜주는 중요한 보호막의 역할을 하기도, 사회적인 평판을 유지하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쓰고 있는 가면이 남보다 더 화려하다는 생각에 우월감을 느끼고 무시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영화 <대학살의 신>은 좁은 아파트에서 진행되는 연극식의 영화이다. 11살 재커리라는 아이가 친구들과 놀던 중 막대기를 휘둘러서 이턴의 앞니 두 개를 부러뜨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재커리의 부모님(조디 포스터, 존 C. 라일리)은 이 사건을 이성적인 방식으로 풀어내고자 이턴의 부모님(케이트 윈슬렛, 크리스토퍼 왈츠)을 모시고 합의서를 작성하게 된다. 이턴의 부모님이 재커리의 집을 나서려는 순간, 앨런(크리스토퍼 왈츠)의 전화가 울리게 되고 전화가 길어지자 재커리의 집에서 조금 더 시간을 보내기로 한다. 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 탓에 그들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주인공 페넬로피와 마이클, 낸시와 앨런은 모두 고상한 척, 교양인인 척하는 어른들이다. 그들은 나름대로의 가면을 쓰고 우월의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시간에 지남에 따라서 그 가면이 점점 벗겨지기 시작한다. 영화 후반부의 네 명은 누가 더 낫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닮아있다. 이런 모습은 자신이 비판한 상대의 행동이 결과적으로는 자신의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낸시가 앨런의 전화기를 물 속에 빠뜨렸을 때, 낸시는 '남자들은 장난감에 너무 집착한다니까'라는 말을 한다. 다음 순간, 페넬로피가 낸시의 가방을 던져 화장품이 모두 쏟아져 나오자 그녀는 화장품을 잡으며 집착을 드러낸다. 결국 자신도 앨런과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낸시의 구토감은 페넬로피의 구토감으로, 앨런의 전화는 마이클의 전화로 이어졌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보다 낫다고 생각하지만 관객이 보기엔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이다.
영화에서는 서부 영화에 대한 이야기부터 성(性), 인종과 관련된 이야기 등 다양한 대화 주제가 오고 간다. 이 대화가 배치된 순서를 살펴보면, 존 웨인 주연의 서부 영화들 → 여성 참정권 운동 → 인종 차별 폐지 → 원시 시대 순서이다. 서부 영화가 장르로서 인정받기 시작한 시점은 1939년 존 포드 감독, 존 웨인 주연의 영화 <역마차>이다. 여성 참정권 운동은 1910 ~ 20년대에 있었던 운동이고, 인종 차별은 1826년 미국 북부에서 링컨이 폐지한 것이 시초이다. 대화의 주제는 인류가 진화해 온 과정의 반대로 진행된다. 다시 말하면, 인류의 퇴화 과정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대화가 오갈 때마다 그들의 생각이 드러나고, 가면이 벗겨지며 그 속의 존재가 모습을 드러낸다.
영화가 마무리되어 갈 때 그들의 가면이 모두 벗겨져서 인류가 진화하기 전 상태의 원숭이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원숭이 네 마리가 서로를 헐뜯다가 한순간 소강상태에 빠졌을 때, 앨런의 전화가 울리고 그들은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아이러니한 점은 아이들이 언제 싸웠냐는 듯이 잘 놀고 있고, 마이클이 버린 햄스터는 잘 살아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다 가면을 쓰고 있다. 하지만 그 두꺼운 가면 뒤에는 크게 다르지 않은 우리가 숨어있다. 그렇기에 남들보다 더 낫다는 우월감을 가질 필요도, 더 낮다는 열등감을 가질 필요도 없다. 두꺼운 가면 뒤에는 모두 비슷한 원숭이가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