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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적 해석가 Aug 19. 2021

피는 검붉다

<위플래쉬> 해석과 광기

 최근, 광기(狂氣)라는 단어가 너무 쉽게 소비됨을 느낀다. 소셜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가볍게 쓰이지만 단어 저편에 있는 공포와 경외감, 아름다움이라는 의미는 거세된 채로 사용된다. 조금 미쳐있는 사람을 보고, 혹은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보고 "찐 광기"라고 부른다. 광기는 결코 쉽게 사용해서는 안될 단어이다. 단어 자체가 함축하는 의미가 상당히 많을 뿐만 아니라, 그 깊이가 깊기 때문이다.


 데미언 셔젤의  영화 <위플래쉬>는 음악 학교에 드럼 전공으로 재학 중인 앤드류(마일스 텔러)와 그의 교수 플레쳐(J.K. 시몬스)에 대한 이야기이다. 학교에서 밤늦게까지 드럼 연습을 하던 앤드류는 퇴근을 준비 중이던 플레쳐 교수의 눈에 든다. 잠깐의 테스트 이후 플레쳐 교수는 앤드류를 자신의 악단에 스카우트한다. 플레쳐는 무섭고 혹독하기로 유명했지만, 그가 이끄는 악단은 최고였기에 앤드류는 기뻐했다. 플레쳐 교수는 경쟁자를 붙이기도 했고, 폭력과 폭언을 일삼으며 앤드류를 자극했다. 중요한 공연 당일, 앤드류가 타고 있던 버스가 고장 나고 설상가상으로 교통사고까지 난다. 겨우겨우 공연장에 도착한 앤드류는 사고가 난 몸으로 드럼 연주를 했지만 공연을 망치게 된다. 플레쳐 교수는 그를 가차 없이 대체하였다. 이런 태도에 분노한 앤드류는 그를 공격한다.


 채찍은 동물을 조련하거나 몰기 위해서 만든 도구이다. 말을 더욱 빠르게 달리게 하기 위한 말채찍이 대표적이다. 걷거나 천천히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하면 빠르게 달린다. 하지만 충분히 빠르게 달리는 말에 과한 채찍질을 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위플래쉬'는 악단이 연주하는 음악의 제목임과 동시에 플레쳐 교수의 채찍질을 뜻한다. 플레쳐 교수는 미친 듯한 속도로 달리고 있는 앤드류에게 쉬지 않고 채찍질을 했다. 고통을 참지 못한 앤드류는 플레쳐 교수에게 폭력을,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은 자살을 선택했다. 플레쳐의 비정상적인 교수법이 말(馬; 앤드류)을 지치게 만들었으며, 적절하지 못한 완급 조절로 인해서 자신의 말(馬; 자살한 제자)을 잃었다.


 영화는 흑과 백의 대비로 개인의 내면을 시각적으로 구분 지었다. 음악의 경지에 이른 자는 검은색 의상으로, 음악적 순수성을 지닌 자는 흰색 의상으로 표현했다. 플레쳐 교수는 시종일관 검은색 옷을 입는다. 반면, 교수의 고성에 두려움에 떨며 쫓겨난 트롬본 연주자는 흰색 옷을 입는다. 앤드류도 처음에는 흰색 옷을 입고 있었지만 시간이 감에 따라서 검은색의 비중이 늘어난다. 마지막에는 플레쳐 교수와 같은 검은색 옷을 입는다. 검은색은 무엇을 의미할까? 앤드류가 드럼 연습을 할 때, 손에서 피가 난다. 드럼 스틱과 손 사이의 마찰로 상처가 나고 그 사이에서 흐르는 피이다. 앤드류는 얼음물에 피가 나는 손을 넣어서 지혈한다. 얼음물은 한순간에 붉어지고, 점점 검붉은 색으로 이내 검은색으로 변한다. 그렇다. 앤드류와 플레쳐 교수의 검은색 옷은 그들이 흘린 피의 총체이다.


 앤드류의 최후는 어떻게 될까? 아마 죽음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찰리 파커와 플레쳐가 가르쳤던 제자 모두 요절(夭折)하였다. 이들은 음악적 광기, 음악적 경지에 올랐지만 스스로를 잃은 사람들이다. 앤드류도 경지에 올랐고, 자기 자신을 잃었으므로 요절할 가능성이 크다. 새는 날아올랐지만 앤드류는 추락했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서 드럼과 하나가 된 상황. 옆에서 지켜보던 아버지는 아들에게 느껴지는 광기에 겁에 질린 표정이다. 드럼을 치며 튀기는 피를 보고 있으면 예술적 완벽에 도달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것이 진정한 광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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