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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적 해석가 Aug 19. 2021

나의 구원자여

<밀리언 달러 베이비> 해석

 복싱 경기를 본 적이 있는가? 복싱 경기 중 피가 멈추지 않는다면, 선수 보호 차원에서 패하는 규칙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복서들은 컷맨(Cut-man)이라고 불리는 지혈 전문가를 대동한다. 가령, 상대의 주먹에 맞아서 코뼈가 부러진 상태로 피가 난다고 해보자. 이때, 지혈 전문가는 코 안에 약을 바르고 뼈를 손으로 맞춰서 임시로 지혈한다. 피가 멈추면 경기가 재개된다. 복싱 경기에서는 선수뿐만 아니라 컷맨의 역량도 중요하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작품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이스트우드 감독의 최고라고 불리는 작품 중 하나이다. 딸과 사이가 좋지 않은 노인 프랭키(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친구 스크랩(모건 프리먼)과 함께 체육관을 운영하며 살아간다. 어느 날, 매기(힐러리 스웽크)라는 30살의 복서가 찾아온다. 하지만, 프랭키는 그녀가 나이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받아주지 않는다. 지켜보던 스크랩은 매기를 조금씩 돕기 시작하고, 프랭키도 마음을 연다. 매기와 프랭키가 함께 대회를 뛰던 어느 날, 상대 선수의 반칙성 플레이로 매기가 크게 다친다. 병원에 입원하여 불구가 된 그녀에게 보험금을 타내려는 가족들이 찾아온다. 프랭키는 그들을 몰아내고 매기를 보살핀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영화의 대표적인 특징은 유사 가족 관계의 등장이다. 유사 가족이란, 혈육 관계는 아니지만 가족의 모습을 하고 있는 관계를 의미한다. <그랜 토리노>에서의 월트와 타오의 관계, <스파이더맨 : 홈커밍>에서 토니 스타크와 피터 파커의 관계가 대표적이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는 프랭키와 매기가 유사 부녀 관계이다. 이런 관계는 프랭키가 좋아하는 홈메이드 레몬 파이로 상징된다. 프랭키는 통조림 레몬을 사용하지 않은 레몬 파이를 좋아한다. 통조림 레몬으로 만들었기에 그만큼 정성이 들어가지 않았고, 맛이 없다는 이유에서이다. 통조림 레몬은 태어나보니 혈육으로 맺어진 피상적인 부녀 관계를 상징한다. 주변에서 쉽게 보이는 통조림 레몬처럼 당연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태어나보니 혈육 관계로 맺어진 부모와 자식은 서로를 당연하게 여기고, 때론 더 많은 상처를 주기도 한다. 반면, 홈메이드 레몬파이는 프랭키와 매기 사이의 관계를 의미한다. 서로를 위해 힘쓰고 오랜 시간 공을 들였기에 관계가 깊고 의미가 크다. 정성 들여 만든 레몬 파이가 더 맛있는 것처럼 말이다.


 프랭키는 지혈 전문가로서 선수의 상처를 치료해주는 역할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딸의 상처는 치료하지 못한다. 처음에 딸에게 준 상처는 겉보기에 크지 않았다. 치료할 정도가 아니라고 생각한 프랭키는 딸을 방치했다. 생각보다 상처는 깊었고 그것을 깨달은 순간은 치료할 시기를 놓친 후였다. 둘의 관계는 점점 악화되었고, 흉터만 남았다. 상처는 제때 치료한다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하지만, 치료 시기를 놓치면 곪아서 더욱 큰 상처가 되기 마련이다.


 매기에게 붙여준 Mo Chuisle(모쿠슈라)라는 별명은 게일어로 '나의 맥박'이라는 의미이다. 이 의미가 확장되어서 '나의 사랑', '나의 혈육'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모쿠슈라'라는 별명은 프랭키에게 매기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보여준다. 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한 프랭키는 죄책감을 느낀다. 그런 그에게 매기는 다시 한번 아버지의 역할을 하도록 도와준 구원이다. 매기를 떠나보낼 때, 프랭키는 자신의 심장(모쿠슈라)이 뽑혀나가는 고통이었으리라. 프랭키에게 매기는 죄책감에 대한 구원이며, 매기에게 프랭키는 꿈을 이루도록 도와준 구원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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