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레보스키> 해석
혹시 선호하는 칵테일이 있나요? 필자는 Godfather나 Old fashioned, 마티니 등을 좋아합니다. 주로 알코올 향이 강한 칵테일들이죠. 달달하고 부드러운 칵테일들은 마시고 나면 술을 마신 듯한 느낌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입맛을 조금은 바꿔준 칵테일이 있습니다. 바로 화이트 러시안이죠.(물론 완전히 달달한 느낌의 칵테일은 아니다.) 화이트 러시안은 보드카에 칼루아, 우유를 넣어 만듭니다. 마치 라테를 마시는 듯합니다. 처음 입을 대면 우유의 달콤함과 칼루아의 커피 향이 풍깁니다. 입안에서는 달콤하고 부드럽지만, 목으로 넘기는 순간 알코올 향이 올라옵니다.
코엔 형제의 영화 <위대한 레보스키> 블랙 코미디입니다. 주인공은 레보스키라는 이름 대신 스스로를 듀드라고 부릅니다. 어느 날, 3인조 강도가 듀드의 집에 침입하여 돈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돈을 받아야 할 상대는 듀드가 아닌 동명이인의 빅 레보스키였죠. 듀드는 위협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기 위해 빅 레보스키를 찾습니다. 문전박대당한 듀드. 그는 친구 월터(존 굿맨), 도니(스티브 부세미)와 함께 볼링 대회에 출전합니다. 이후 다시 레보스키 씨에게 전화가 옵니다. 3인조 강도로부터 위협 전화가 왔기 때문입니다. 빅 레보스키 씨는 듀드에게 돈을 전달하는 일을 맡깁니다. 듀드는 더 큰 미스터리로 빠집니다.
듀드가 마시는 화이트 러시안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화이트 러시안은 두 가지를 의미합니다. 첫째, 복잡한 사건을 상징합니다. 영화에서 화이트 러시안은 맥주와 대비됩니다. 서로 다른 술을 섞기에 보리로만 만드는 맥주보다 확실히 복잡합니다. 듀드가 맥주를 마시는 장소는 크게 두 곳입니다. 차 안과 볼링장에서 입니다. 듀드는 차 안에서 자신에게로 튄 담뱃불을 끄기 위해 맥주를 붓죠. 뜨거우니 불을 꺼야 한다는 생각에 맥주를 붓는 행위는 단순한 사고(思考)입니다. 또한, 볼링을 치는 순간만큼 그는 아무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이렇듯 맥주는 단순하게 행동한 순간에 등장합니다. 그에 반해서 화이트 러시안은 사건이 복잡하게 얽혀있을 때 등장합니다.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거나 굵직한 일을 겪는 순간입니다. 둘째, 화이트 러시안은 인생을 상징합니다. 커피 향의 칼루아, 쓴 보드카, 달콤한 우유가 섞여서 다양한 맛과 향을 내는 이 칵테일은 우리의 인생과 닮았습니다. 처음 시작은 달달한 일상이었습니다. 강도에게 위협을 당한 이후 씁쓸한 커피 향이 난죠. 차가 불타고 동료가 죽은 시점에서는 쓴 알코올이 올라옵니다. <위대한 레보스키>는 화이트 러시안의 모든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월터와 듀드, 도니는 팀을 꾸려서 볼링 토너먼트 경기에 참여합니다. 볼링은 무거운 공으로 10개의 핀을 쓰러뜨리는 스포츠입니다. 힘을 너무 세게 줘도, 약하게 줘도 안되죠. 적당한 힘과 회전량이 맞물렸을 때 비로소 스트라이크가 나옵니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듀드는 이런 말을 합니다.
Stranger : How have things been going?
Dude : Well, you know, strikes and gutters, ups and downs.
볼링에는 모든 핀을 쓰러뜨린 스트라이크(Strike)와 어떤 핀도 쓰러뜨리지 못한 거터(Gutter)가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볼링과도 닮았죠. 볼링 또한 인생을 상징합니다. 때로 인생이라는 거대한 볼링공이 나를 위협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내가 볼링공이 되어서 장애물을 밀고 나가기도 하죠. 즉, 볼링과 화이트 러시안은 둘 다 인생을 상징합니다.
이제, 영화의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해봅시다. <위대한 레보스키>를 관통하는 대사는 "Where's the money Lebowski?"입니다. 각기 다른 사건으로 보이는 일들은 돈이라는 연결고리로 연관됩니다. 듀드의 집을 찾아온 마멋 조직(100만 달러를 달라고 하는 3인조 갱단을 편의상 마멋 조직이라고 하겠다.), 빅 레보스키, 마우드의 요구는 모두 돈과 관련 있죠. 100만 달러를 횡령하기 위해 듀드를 고용한 빅 레보스키의 말로(末路)는 참담합니다. 깡패라고 무시하던 듀드 앞에서 양탄자 위에 엎드려있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듀드를 통해서 돈에 대한 인간의 욕심을 풍자합니다. 이 풍자의 절정은 도니의 죽음입니다. 도니가 심장마비로 사망한 이후 듀드와 월터는 납골당을 찾습니다. 납골당 측은 유해를 담을 뼈단지 값으로 180$를 요구하죠. 사람이 죽었음에도 여전히 돈을 요구하는 사람들. 분노한 월터는 보란 듯이 사탕 박스에 유해를 담습니다.
19세기에 등장한 허무주의(虛無主義)는 신 혹은 구원 등이 존재하지 않으며, 본질적으로 절대적인 가치와 권위가 없다는 주장입니다. <위대한 레보스키>에서는 재키 트리혼, 마멋 조직이 허무주의자에 해당합니다. 또한, 존 터투로 배우가 연기한 Jesus 캐릭터는 허무주의를 대표합니다. Jesus라는 이름이 헤이수스로 번역되긴 했지만, 예수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나오는 예수와는 달리 상당히 경박하고 문제가 많죠. 성추행 전적이 있으며 볼링공을 핥는 등 기행을 이어나갑니다. (Jesus라는 이름은 흔한 이름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자의 행동은 허무주의와 일맥상통합니다. 듀드는 이런 Jesus를 싫어합니다. Jesus가 등장할 때, 이글스의 "Hotel California"가 멕시코 풍으로 편곡되어 울립니다. 듀드가 말리부에서 택시를 타고 오는 길에 이글스를 싫어하니 노래를 꺼달라고 하죠. 이렇듯 듀드는 지속적으로 Jesus를 거부합니다. 또한, 아무도 믿지 않는 마멋 조직이 허무주의자라는 점은 상당히 아이러니합니다. 신과 구원을 믿지는 않지만, 돈은 믿기 때문이죠. 모두가 그토록 원하는 100만 달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저 허상일 뿐이죠. 영화에 나오는 모두는 허상을 쫓습니다.
월터는 베트남 전쟁 참전용사이다. 항상 군복을 입고 있으며, 말을 할 때 베트남에 있을 시절을 이야기한다. 베트남 전쟁에 대한 언급은 그의 분노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Walter : Smokey, this is not 'Nam. This is bowling. There are rules....(중략)... Has the whole world gone crazy? Am I the only one around here who gives a shit about the rules? Mark it zero!
Walter : No, without a hostage, there is no ransom. That's what ransom is. Those are the fxxking rules.
월터는 베트남 전쟁 참전 용사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부정적인 입장을 가진다. 젊은 청춘들이 희생당하였으며, 무법지대라는 말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월터는 규칙을 강조한다. 베트남 전쟁은 명분 없고, 청춘의 희생을 강요한 전쟁이다. 아무런 규칙도 없었다. 월터의 분노는 스모키가 선을 넘었기 때문에, 마멋 조직이 차를 불태웠기 때문이 아니다. 규칙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 사회 구조에 분노를 느낀다. 돈에 눈이 멀어 규칙을 파괴하는 자들. 이들을 방관하는 사회. 월터는 규칙 파괴로 인해 희생당한 청춘들을 베트남에서 마주했다. 월터는 여기에 분노한다.
다시 영화의 시작으로 가보자. 황량한 서부에 회전초 하나가 굴러가고 있다. 이 회전초는 척박한 땅을 지나 도시를 통과하여 바다로 향한다. 회전초는 반복되고 이어지는 인생을 상징한다. 어디로 갈지 모르고, 어디로 향하는지 모른 채 그저 굴러간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카우보이는 "인간 코미디"라는 말을 한다. 듀드와 마우드 사이의 아이가 인생을 이어간다. 우리의 인생은 마치 스트라이크와 거터를 치는 볼링처럼. 달콤함과 씁쓸함이 반복되는 화이트 러시안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