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맨> 해석
"Life's but a walking shadow, a poor player that struts and frets his hour upon the stage and then is heard no more. It is a tale told by an idiot, full of sound and fury, signifying nothing."
"인생이란 걸어 다니는 그림자이다. 무대 위에서 스스로를 뽐내지만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가련한 배우다. 인생은 바보 같은 이야기와 분노로 가득 차있고, 아무 의미 없다." 셰익스피어의 소설 <맥베스>에 나오는 이 대사는 인생을 관통합니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영화 <버드맨>은 한때 슈퍼히어로 캐릭터로 잘 나가던 배우 리건 톰슨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리건은 과거의 영광을 뒤로한 채 이제는 잊혔습니다. 변화와 명성을 추구한 그는 브로드웨이 연극 무대에서 재기(再起)를 시도합니다. 버드맨으로서가 아닌 배우 리건 톰슨으로서 말이죠.
영화 <버드맨>은 할리우드의 영화와 뉴욕 브로드웨이의 연극을 극명하게 상충시킵니다. 뉴욕 타임스 평론가와 마이크는 할리우드의, 자본을 중심으로 한 코믹스 영화를 경멸하죠. 반면 주인공 리건 톰슨은 할리우드에서 왔습니다. 이들의 갈등은 여기서 출발하죠. 뿐만 아니라, <버드맨>은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극명한 듯 모호하게 그렸습니다. 할리우드 코믹스 영화를 가짜로, 뉴욕의 브로드웨이 연극을 진짜로 규정합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둘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연극 프리뷰에서 마이크가 술을 바꾼 리건에게 분노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취한 마이크가 냉장고 속 치킨을 들며 "The only thing that is real on this stage is this chicken. So, I'm gonna work with the chicken."이라고 말하죠. 이때, 치킨은 버드맨에 대한 풍자입니다.
영화 내내 버드맨이 리건을 괴롭히죠. 리건에게 버드맨은 어떤 의미일까요? 버드맨은 신(神)입니다. 버드맨 가면을 쓰고 있는 동안 리건은 엄청난 능력을 가지죠. 거대한 로봇 익룡과 싸우고, 울음소리 한 번에 수백만 명의 고막이 터집니다. 뿐만 아니라,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는 능력도 있습니다. 리건의 딸인 샘은 휴지에 무늬를 그립니다. 마약 클리닉에서 배운 행동인데요. 두루마리 휴지 전체는 60억 년을 의미합니다. 이 위에 그리는 선 하나는 1000년을 의미하죠. 결과적으로 인간이 존재하던 시기는 두루마리 한 칸에 불과합니다. 리건은 샘에게 받은 한 칸의 휴지로 입을 닦죠. 다시 말하자면, 리건은 인간을 몰살했습니다. 버드맨인 그는 신의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버드맨이 아닌 그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입니다.
사실 리건은 영화 내내 버드맨의 가면을 쓰고 있습니다. 그저 물리적인 가면이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리건이 연극할 때 쓰는 가발은 버드맨의 가면을 상징합니다. 한 극이 끝난 이후 대기실에서 가발을 벗는 순간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마주하죠. 리건이 속옷만 입은 채 타임스퀘어 한 바퀴를 도는 장면에서 한 손에 가발을 꽉 쥐고 있습니다. 몸은 나체이지만 가발만은 사수한 채로 빠르게 걷는 모습은 가발(버드맨 가면)을 통해 자신의 초라함을 감추려는 모습입니다. 리건이 도심에서 버드맨의 능력을 상상하는 장면 이후 자살을 결심한 이유는 버드맨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리건이 총을 머리에 쏜 이유도 그가 버드맨의 가면을 떼어내기 위함이죠. 이렇듯, 리건의 얼굴에는 버드맨 가면이 박혀있습니다. 너무나도 깊게 박혀있어서 얼굴을 뜯어내지 않는 이상 벗을 수 없죠. 병원에 실려온 이후 리건이 쓰고 있는 거즈는 버드맨 가면과 닮았습니다. 리건이 화장실에서 거즈를 떼어내는 장면은 버드맨으로부터 벗어났음을 암시합니다. "Bye bye and fuck you"를 통해서 말이죠.
많은 사람들은 영화의 결말의 진짜 의미를 궁금해합니다. 사망의 시점이 모호하기 때문이죠. 먼저, 가능한 해석들을 살펴보고 개인적인 해석을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영화에서 리건의 죽음이 의심되는 순간은 총 3장면입니다. 노숙을 한 리건이 건물 위에서 뛰어내려 하늘을 날아다니는 장면, 무대 위에서 총을 자신의 머리에 쏜 장면, 마지막으로 병원 장면입니다. 가장 가능성 있는 죽음의 순간은 무대 위입니다. 영화는 끊임없이 리건의 초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초능력은 거진 혼자 있을 때만 사용되죠. 그러던 그가 유일하게 남들 앞에서 능력을 드러낸 순간은 건물 위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에서 입니다. 다만, 이웃이 촬영인지 실제인지 묻자 촬영이라고 답합니다. 즉, 이 순간 그의 행동은 가짜(연기)입니다. 그러나, 연극의 마지막 장면에서 진짜 총을 가지고 머리를 쏩니다. 이 순간 그는 버드맨을 떼어냈습니다. 병원 장면은 사후 상상으로, 죽음을 상징하는 매개물들이 많이 나옵니다. 먼저, TV 뉴스에서 사람들이 리건을 위해 촛불을 켰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정작 그 모습은 추모에 가깝죠. 샘은 리건의 병실에 라일락을 가져왔습니다. 전통적으로 라일락은 불운을 의미하기 때문에 집 안이나 병원에 두지 않습니다. 게다가 병원에 있는 라일락은 죽음을 의미하죠. 무대 위에서의 죽음이 가장 가능성 있습니다.
수많은 해석들이 있겠지만, 필자는 <버드맨>에서 다루는 이야기 자체가 리건 톰슨의 사후 상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리건 톰슨은 "버드맨 3"라는 작품을 마지막으로 사망한 것이죠. 이런 해석을 하는데엔 몇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영화가 시작하고 이런 대사들이 나옵니다.
And did you get what you wanted from this life, even so?
I did.
And what did you want?
To call myself beloved, to feel myself beloved on the Earth.
-Raymon Carver, LATE FRAGMENT-
지구 상에서 가장 사랑받고 싶어한 소설가 레이먼드 카버의 말입니다. 이후 아주 짧은 순간 죽은 해파리와 추락하는 이카루스의 모습이 담깁니다. 죽은 해파리는 리건의 자살 시도를 의미하고, 추락하는 이카루스는 버드맨으로서 정점을 찍고 사망한 리건을 의미하죠. 모두 죽음에 대한 암시입니다. 리건은 버드맨으로서가 아닌 리건 톰슨으로서 사랑받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두 버드맨으로 기억합니다. 영화 <버드맨>은 평생을 '버드맨'으로 살아온 리건이 이름으로 불리고 싶다는 욕구에서 나온 상상입니다. 둘째, 연극은 리건의 상황을 대변합니다. 연극의 마지막 장면, 자살을 선택하는 장면에서의 대사는 "I'm nothing. I'm not even here...(중략)...I don't exist.I don't exist.I don't exist...." 입니다. 극중 연극에서조차 그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샘은 리건에게 온라인 상에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죠. 마지막으로, 영화가 시작하고 지속적인 꽃의 언급, TV 속 사람들이 리건을 기억하는 모습은 모두 장례식과 관련있습니다. 리건이 초능력을 쓸 수 있는 이유 또한 <버드맨>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모두 그의 상상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