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라> 해석
전쟁은 직•간접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국토를 파괴하고, 자연을 훼손하며, 사람들이 죽죠. 참전 용사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습니다. 전쟁의 참상은 국가를 가리지 않습니다. 승전국과 패전국, 아니 전 세계가 피해를 입습니다. 현 세대는 전쟁을 겪지 않았기 때문에 피부에 와닿지 않습니다. 그저 하나의 역사적 사실일 뿐이죠. 정치적으로 얽힌 복잡한 관계의 범지구적 결과이자, 과학 발전의 원인이라고 배웁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인 동시에 패전국인 일본은 전쟁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공포가 상당했습니다. <바람이 분다>, <맨발의 겐> 등의 작품을 보면 알 수 있죠. 이 애니메이션, 만화들은 전쟁의 참상을 알리고 반전을 주장합니다. 오늘 다룰 영화 <아키라> 또한 전쟁에 대한 공포와 핵무기에 대한 공포를 다루고 있습니다.
<아키라>하면 카네다의 빨간 바이크와 점퍼가 떠오르죠. 카네다의 오토바이는 불법적으로 개조된, 엄청난 출력의 오토바이입니다. 컴퓨터로 제어하는 abs 브레이크 시스템과 12000 rpm의 압도적인 출력을 가집니다. 주변 친구들도 미치지 않고서 저런 출력의 바이크를 탈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그만큼 강력하고 위험한 바이크입니다. 영화 중반, 테츠오가 다시 잡혀갔을 때, 카네다 일당은 쇼핑몰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때, 카네다의 여자 친구는 "바이크가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지."라고 말합니다. 카네다의 바이크는 일본의 무기를 상징합니다. 바이크 주변에 대기업들의 로고가 붙어있죠. BMW, SHOEI, CANON, CITIZEN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기업들 말입니다. 이때, 독일의 BMW를 제외하면 전부 일본 기업들입니다. 즉, 대기업의 자본력으로 만들어진 전쟁 당시의 무기를 상징합니다.
카네다의 점퍼 뒤에는 큰 알약 하나가 그려져 있는데요. 알약의 색상이 초록색입니다. 반면 테츠오가 하루키야 바에서 들어가 주인에게 달라고 말하는 알약은 붉은색이죠. 카네다의 알약과 테츠오의 알약은 보색 관계입니다. 왜 알약이 보색 관계일까요? 테츠오는 아키라의 힘을 거부하지 않고 마음껏 사용합니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함이 아닌 파괴적이고 이기적인 목적으로 말이죠. 테츠오가 하루키야 바에 가서 구매한 알약은 마약으로, 테츠오가 얻은 힘을 지칭합니다. 아키라의 힘이 마치 마약처럼 끊을 수 없다는 의미이죠. 이를 조금만 더 확장해 봅시다. 테츠오가 가진 힘, 다시 말하자면 아키라의 힘은 과학의 산물입니다. 아키라는 이전 세대의 과학자들이 이해하지 못해서 난도질당한 채로 봉인되었죠. 아키라는 무궁무진한 힘을 지닌 과학을 상징합니다. 조금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아키라의 힘은 핵무기를 가리킵니다. 테츠오가 아키라의 힘을 활용하는 모습은 과학을 이기적이고 부정적인 방향, 즉 무기 개발의 방면으로만 사용하는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카네다의 알약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카네다는 테츠오를 부하처럼 다루지만, 사실 둘도 없는 친구입니다. 카네다가 테츠오를 구하러 위험을 무릅쓰고 테츠오 대신 싸운 이유는 모두 그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카네다는 테츠오의 치료제와 같은 역할입니다. 카네다의 알약이 빨간색의 보색인 초록색인 이유이죠. 테츠오가 인간이 감당하기에 너무 과한 과학 능력을 의미한다면, 카네다는 과학의 치료제이자 원초적인 상태인 자연을 의미합니다. 자연만이 과학의 부정적인 질주를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키라>의 마지막 장면에서 카네다와 카네다의 옷을 입은 케이가 살아남죠. 아키라의 힘(과학의 무기화)으로 폐허가 된 네오 도쿄의 땅을 밟고 카네다(자연)가 구름 사이의 밝은 빛을 마주하는 장면은 '그래도 아직 희망이 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전쟁이 발발하는 원인은 정치적인 이유입니다. 국가 수뇌부가 잘못된 판단을 하거나 국가 간의 오해, 진영 간의 첨예한 대립이 주된 원인이죠.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갈등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입습니다. 전쟁을 일으킨 정치인들은 모두 살아남거나 도망쳐서 전쟁 이후의 나라를 또다시 다스리죠. <아키라>에서도 이런 정치인들의 면모가 부각됩니다. 최고 위원 회의라고 불리는 수뇌부들의 모임은 그저 펜대를 굴리는 무늬뿐인 의원들에 불과합니다. 이런 그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이는 인물은 바로 네즈 위원입니다. 대령이 쿠데타를 일으킨 이후 위원들을 체포하기 위해 진입을 강행하는데요. 네즈 위원은 채권과 돈을 모두 서류가방 안에 가득 채워 넣습니다. 일을 처리하지 못한 류가 돌아오자 자신의 부하인 그에게 마저 총을 쏘는 무자비한 모습을 보여주죠. <아키라>에 나온 수뇌부들이 무능하게 묘사된 이유는 죽음이 눈앞에까지 온 상황에서도 자신의 잇속을 챙기기 바빴기 때문입니다. 이는 단순히 영화 속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현실은 이보다 더한 사람들이 있죠. 무능한 권력자들 아래에서 피해는 국민들의 몫입니다. <아키라>는 단순히 반전을 외치고 있지 않습니다. 전쟁의 원인과 나아갈 방향을 함께 제시합니다.
베이비 룸에 있는 카오리와 야마가타, 미야코 그리고 아키라는 모두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영화 후반부에 묘사된 바에 따르면 이들은 전부 실험 대상이었죠. 아키라의 힘을 실험할 대상입니다. 어른들은 그들을 무기로 사용하고자 하죠. 그 결과 각자 능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는 당시 자행되었던 수많은 생체 실험과 무자비한 고문을 암시합니다. 단순히 상대국을 압도하고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희생은 강요되었고, 무기가 개발되었죠. 이렇듯 전쟁은 비극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