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펜하이머와 과학자의 윤리

by 이기적 해석가


최근 들어, '인공지능'이라는 말이 만연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한 산업이 각광받는 이유는, 단순히 신기술이 개발되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아무리 새로운 기술이라고 해도 투자가 없다면 발전하지 못합니다. 투자의 기준은 해당 기술로 돈을 벌 수 있는지, 국가적인 패권을 쥘 수 있는지, 정치적 활용도가 높은지 등입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완전히 새로운 기술일지라도 돈이 되지 않거나 기존의 엘리트 집단이 가진 무언가를 뒤흔든다면, 산업은 발달하지 못합니다.


인공지능은 데이터가 중요합니다. 얼마나 좋은 원시 데이터(Raw Data)를 얻는지가 중요하죠. 이것이 애플과 구글, 국내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데이터를 수집하려는 이유입니다. 더 개인적이고 사적일수록 정확한 추천이 가능하고, 제품을 팔거나 광고할 때 마음의 장벽을 무너뜨리기 쉽습니다. 거부감 없는 광고가 개인에게 제공되고, 기업은 더더욱 개인 맞춤형 광고를 위해 여러분의 일상을 기록하고 감시할 것입니다. 인공지능 분야로 돈이 몰리는 지금, 저 또한 해당 분야를 공부하면서도 염려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원자폭탄을 만드는 과정을 담은 영화 <오펜하이머>는 핵융합과 핵분열이라는 제목으로 오펜하이머와 스트라우스의 갈등을 담았습니다. 별을 연구하던 오펜하이머가 전쟁이라는 이름 아래, 별의 기본 원리를 이용하여 폭탄을 만듭니다. 오펜하이머는 자신의 발명품이 수많은 사람을 죽일 것을 우려했고, 그 일은 현실이 됩니다. 그는 죄책감을 느끼고 반핵 운동을 벌입니다. 그러나 매카시즘의 광풍으로 공산주의자로 낙인찍힌 그는 비공개 청문회에서 아주 사소한 영역까지 발가벗겨집니다. 기존의 <오펜하이머> 해석 글이 1950-60년대의 매카시즘에 중심을 맞췄다면, 여기서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common.jpeg?type=w966

늘 그렇듯, <오펜하이머>의 여러 장면들을 머릿속에서 돌려보다가 그로브스 장군이 오펜하이머에게 비꼰 대사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A Nobel Prize for making a bomb? (폭탄을 만들어서 노벨상을 받겠다고요?)" 그러자 오펜하이머는 답하죠. "Alfred Nobel invented dynamite.(알프레드 노벨은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했어요.)"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을 개발한 성과로 스타덤에 오릅니다. 하지만, 그는 매일같이 사람들이 죽는 환상을 보고 그가 한 행위에 대해 공포에 떨었습니다. 문득, 인공지능 기술이 현시대의 원자폭탄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새로운 기술이고 신기하지만, 그 이면에는 빠져나가는 수많은 개인 정보와 데이터, 민감한 사적 기록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기업과 정부는 개인정보를 전부 수집하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관리할 수 있습니다. 이따금씩 그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스마트 워치와 스마트 링을 비롯한 웨어러블 기기들이 늘어나는 이유는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감시의 대상이 되도록 하기 위함이 아닐까요? 독재 사회가 감시를 강제한다면, 민주 사회에서는 사용자가 스스로 감시를 받아들입니다. 기술을 만드는 사람은 그 기술이 미칠 영향까지도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과학자와 공학자의 윤리입니다. 윤리적 기준이 부족하거나 돈이면 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정보와 기술을 독점하고 있는 지금, 오펜하이머가 말한 '연쇄 효과'는 이미 시작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공지능으로 죽은 사람의 흔적을 학습하여 가족들로 하여금 심리적 장벽을 허물고 광고하는 기술을 소개하며 '새로운 기술을 두렵게 생각하지 말고 사용하여 그 속에서 돈을 벌 생각을 해라.'라는 모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산업의 최전선에 위치한 공학자와 과학자의 윤리관이 심히 걱정되어 몇 글자 적어봅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미디어와 조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