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떠오른 <파이트 클럽> 해석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상상해 보곤 합니다. 대다수의 경우 물질적이거나 명예로운 성공을 꿈꾸지 않을까 싶습니다. 좋은 차를 타고 근사한 음식점에서 식사하며 가격표를 보지 않고 물건을 구매하는 미래를 말이죠. 소셜 미디어에는 이런 꿈을 현실로 이룬 사람들이 많아 보입니다. 그들은 금세 우상이 되고 사람들은 틀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서울 어디에 몇 평짜리 집이 있어야 하고, 통장 잔고에 0이 몇 개 이상이어야 하며, 명문대를 나왔는지, 대기업에 다니는지 등 기준들이 모여 표준이 생기죠. 이 기준들에 만족하지 않으면 표준 이하 실패한 인생으로 치부됩니다. 문득 이 사실을 인식했을 때, 내면의 타일러 더든이 깨어나는 게 느껴졌습니다.
자동차 리콜 요원인 내레이터는 쉴 새 없이 전 세계를 오갑니다. 시차로 불면증을 겪으며 깨어나면 새로운 나라에 가 있는, 항상 반 수면상태의 인물입니다. 내레이터는 비행기에서 만나는 친구들은 하나같이 일회용과 같다고 표현합니다. 그러던 중 타일러 더든(브래드 피트)을 만납니다. 둘이 대화를 나누던 중 타일러는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합니다. 이때, 내레이터 앞을 지나가며 다음과 같은 대사를 합니다.
"Now, a question of etiquette : as I pass, do I give you the ass or the crotch?(매너의 딜레마군. 지나갈 때 엉덩이를 보여줘야 하나 앞을 보여줘야 하나?)"
해당 문장은 영화의 주제를 관통합니다. 필자는 <파이트 클럽> 해석 글에서 타일러 더든은 자기 파괴를, 내레이터는 자기 계발을 상징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IKEA 카탈로그를 모으고 유명한 프랜차이즈 물품을 사용하며 자기 계발을 하던 내레이터는 삶에 회의를 느낍니다. 그래서 우연히 만난 자기 파괴적인 인물, 타일러 더든에게 끌립니다. 내레이터는 타일러의 방식으로 살아가죠. 그러나 자기 파괴 또한 정답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영화는 내레이터를 통해 자기 계발과 자기 파괴 사이에 놓인 현대인을 제시합니다. 타일러가 한 “매너의 딜레마”에 관한 대사는 그런 자기 파괴와 자기 계발이 큰 차이가 없음을 암시합니다. 결국 둘 다 옳은 방식이 아니라는 것이죠. 자기 파괴가 엉덩이라면 자기 계발은 가랑이에 불과합니다. 즉, 매너의 딜레마는 영화의 주제를 관통하는 복선입니다.
내레이터에게 유일한 낙(樂)은 이케아(IKEA) 카탈로그 속 신제품들을 구매해 집 안을 채우고,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일뿐입니다. 이케아와 스타벅스를 비롯한 대형 프랜차이즈 기업들은 성공한 사람이 사용하는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앞세워 광고합니다. 사람들은 그런 광고와 기업 이미지에 제품을 구매하죠. 내레이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남들이 전부 따르는 틀에 맞추기 위해 이케아 카탈로그를 살핍니다. 그러나 은연중에 틀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그는 타일러 더든이라는 또 다른 자아를 만들어 냅니다. 이때, 내레이터는 자기 개발을, 타일러 더든은 자기 파괴를 상징합니다.(해석은 하단에 링크로 달아놓겠습니다.) 내레이터가 비행기에서 타일러 더든을 만났을 때, 자신과 똑같은 이름이 아닌 똑같은 가방에 놀란 이유는 자본주의가 만들어 놓은 '표준'이라는 틀에 끼워 맞추느라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저도 요즘 들어 그런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거대한 매트릭스 속 하나의 NPC가 아닐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주변의 모두가 틀에 박힌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명문대에 가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이라고, 대기업에 가지 못하면 먹고살지 못할 것처럼 이야기하죠. 바뀌지 않는 폭력적인 학교 시스템(물리적인 폭력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과 과도한 학구열은 창의력과 사고력을 말살시킵니다.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가거나 밟고 올라가야 하고 길에서 벗어나면 곧 죽을 것처럼 욕먹습니다. 자본주의 체제 속 짜 맞춰진 표준과 간판처럼 내걸리는 우상들은 영화 <아일랜드> 속 아일랜드에 가려는 복제인간들 같습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부추기지만, 복제 인간은 주인을 위한 부품에 불과하죠. 타일러 더든은 영화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노래하고 춤추는 하찮은 쓰레기 같은 존재일 뿐." 표준을 만들고 통제하려는 현대 사회가 숨쉬기 힘들어 몇 글자 적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