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스텔라 해석
0차원의 점, 1차원의 선, 2차원의 면, 3차원의 공간, 4차원의 시간 그리고 5차원의 사랑
<인터스텔라>는 어려운 우주 영화로 알려져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 영화로 뽑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은데요. 우주라는 배경이 주는 위압감과 중간중간 등장하는 공학 용어, 긴 러닝타임이 원인입니다. 실제로 물리학자 킵 손이 자문을 했고, 촬영 중 논문 2편이 나올 정도이니 압도감이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사실 인터스텔라는 그리 어려운 영화가 아닙니다. 복잡한 구조를 드러내면, 남는 핵심은 단순하기 때문입니다. 인터스텔라는 사랑에 대한 영화입니다.
가까운 미래, 인류는 기상 악화와 병충해로 인한 식량 부족, 만성적인 모래폭풍 등 심각한 기후 위기를 겪습니다. 전직 조종사이자 엔지니어인 쿠퍼는 미 항공우주국, NASA의 부름을 받고 인류의 새로운 터전을 찾는 비밀 프로젝트에 우주비행사로 참여합니다. 이 사실을 들은 딸 머피는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느낍니다. 쿠퍼는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징표로 머피에게 시계를 건넵니다.
선임자들이 먼저 도착한 행성은 인간이 살 수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밀러의 행성은 블랙홀을 중심으로 공전하여 시간의 흐름이 빨랐고, 만 박사의 행성은 박사가 살아남기 위한 미끼에 불과했습니다. 우주에서 일련의 사건을 겪은 쿠퍼는 가르강튀아라는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고, 5차원의 존재가 열어둔, 머피 방 속 책장이 반복되는 태서랙트로 빨려들어갑니다. 그곳에서 쿠퍼는 자신과 어린 머피를 향해 돌이키지 못한 과거를 후회하고, 세상을 구할 존재가 머피임과 중력이 차원을 오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쿠퍼의, 머피를 향한 사랑을 나타내는 장면은 많습니다. 머피와 함께 무인기를 추적하는 장면과 “Once you’re a parent, you’re the ghost of your children’s future(부모는 자식을 위해 유령같은 존재가 되는거야.)” 라는 대사, 밀러 행성에서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밀린 수 십 년 치의 영상을 보는 장면에서도 느껴집니다. 그러나 단순히 이런 장면만으로는 영화의 주제가 ‘사랑’이라고 도출해 내기에는 빈약합니다. 주제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쿠퍼가 마주한 4차원의 태서랙트를 분석해야 하고, 태서렉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차원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차원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잠시 수학적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먼저, 0차원은 점입니다. 가로축도, 세로축도 없는 그저 점의 상태이죠. 이 점들이 무수히 모여서 1차원의 선을 구성합니다. 축이 생겨 좌우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이 선들이 무수히 모여서 2차원의 평면을 구성하고, 평면이 모여 3차원의 공간을 만듭니다. 지금 설명드린 부분은 “적분”의 개념입니다. 단적인 예시로 3차원 정육면체의 부피를 구하는 방법은 밑면의 넓이를 구하고 높이만큼 곱하는 것이죠. ”높이만큼 곱한다”라는 말은 결국 밑면의 넓이를 “높이”번 더한다는 의미입니다. 같은 맥락으로, 4차원은 공간의 누적입니다. 누적된 공간이 구성하는 것은 시간이고, 그렇기에 4차원은 시간입니다.
이때, 상위 차원은 하위 차원을 조작할 수 있습니다. 3차원 존재인 우리가 2차원의 평면이나 1차원의 선을 이해하고, 그림을 그릴 수 있듯이 말이죠. 그러나 하위 차원의 존재는 상위 차원을 인식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3차원의 존재인 우리가 4차원의 시간을 맘대로 조작하지 못하죠. 태서렉트는 5차원의 존재가 만든, 3차원의 쿠퍼가 이해할 수 있는 4차원의 공간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차원을 오갈 수 있는 힘은 바로 중력입니다.
<인터스텔라> 전반에 걸쳐 감독은 중력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중력은 차원을 초월하여 하위 차원에서 상위 차원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중력은 물질이 가진 질량이자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입니다. 마치 지구가 중심 방향으로 물체를 끌어당기는 것처럼 말입니다. 끌어당기는 힘, 두 사람의 몸은 떨어져 있어도 연결될 수 있게 만드는 힘, 그 힘은 바로 사랑입니다. 감독은 사랑을 중력에 은유하였고, 바로 그 사랑의 힘으로 차원을 초월하여 머피와 쿠퍼를 연결하였습니다. 더 나아가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4차원 시간의 누적을 사랑으로 상정하여 5차원의 존재는 사랑을 축으로 하는 우리 스스로라는 해답을 찾아냅니다. 그런 의미에서 머피의 시계는 쿠퍼의 사랑을 상징하는 상징물입니다.
밀러 행성에서 들리는 배경 음악, 쿠퍼가 타고 우주로 가는 인듀어런스 호, 쿠퍼와 머피의 시계, 상대성 이론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전부 시간에 대한 암시라는 점입니다. 물로 가득한 밀러 행성의 배경음악 속 반복적으로 들리는 초침 소리는 1.25초 당 한 번을 주기로 합니다. 한 번의 초침은 지구 시간으로 하루를 의미합니다. 인듀어런스 호는 총 12개의 구역으로 나누어진 원형입니다. 이는 12진법을 사용하는 시계에 대한 직접적인 암시입니다. 감독이 시간을 언급한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관객들로 하여금 시간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직관적으로 깨달을 수 있게 합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3차원 존재인 우리는 4차원의 시간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머피를 향한 사랑을 의미합니다. 영화 초반, 옥수수밭에서 자신의 이름을 왜 ‘머피의 법칙’에서 따 왔냐고 묻는 딸에게 쿠퍼는 “머피의 법칙은 일어날 일이 일어났다는 뜻이야.”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시간을 초월한 자들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일어날 일을 안다는 건 미래와 과거를 자유로이 오갈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머피는 세상을 구할 것이고, 쿠퍼는 그런 머피의 유령이 됩니다. 모선인 인듀어런스 호를 잃지 않기 위해 무리한 도킹을 감행하는 절박함과 같이 쿠퍼는 유령이 되어 머피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인터스텔라 해석을 쓴 줄 알았는데, 쓴 적이 없어 몇 글자 남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