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트클럽과 차라투스트라

by 이기적 해석가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영화 <파이트 클럽>은 힘들 때마다 찾게 되는, 묘하게 힘이 되는 영화입니다. 머릿속 영화관에서 자주 상영하기도 하였고, 제 블로그와 브런치에 여러 장면, 그리고 영화 자체에 대한 해석을 여러 번 다뤘습니다.

<파이트 클럽>은 컬트적 인기를 끌어서 많은 팬덤을 보유한 영화입니다. 화려한 시각효과와 제4의 벽을 넘나드는 세련된 연출 그리고 영화가 품은 주제 또한 통찰력 있습니다. 혹시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이 있다면, 영화를 감상하고 읽으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이 글에는 <파이트클럽>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파이트 클럽>에서 내레이터는 자동차 리콜 판매원으로, 전 세계에서 발생한 자동차 사고들을 조사하기 위해 매일같이 비행기에 오릅니다. (IMDB에서 에드워드 노튼의 역할을 내레이터로, 브래드 피트의 역할을 타일러 더든으로 하였으므로 이 글에서도 이 명칭을 따르겠습니다.) 밤낮 없는 생활 탓인지, 그는 불면증에 시달립니다. 유일한 낙은 신상 IKEA 가구를 사서 모으고, 스타벅스 커피나 던킨 도너츠 등 다양한 브랜드를 소비하는 것입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자신과 동일한 가방을 가진 비누 판매원, 타일러 더든을 만나고 묘한 매력을 느낍니다. 출장에서 돌아온 날, 집에 폭발 사고가 있었고, 내레이터는 잠시 머물 곳을 찾기 위해 타일러 더든에게 전화를 겁니다. 내레이터는 예측할 수 없는 타일러에게 점차 끌리고, 그와 함께 생활을 하기 시작합니다.


<파이트 클럽>에서 내레이터는 자기 계발을 상징합니다. 내레이터가 의사의 추천(?)으로 방문한 환우회(고환암으로 고환을 제거한 남자들의 모임, 백혈병 환자들의 모임, 결핵 환자들의 모임 등)에 참여하면서 불면증을 고칠 수 있었던 이유는 내레이터가 환자들과는 다른, 상대적인 건강함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가 소비하는 브랜드들은 현대인들이 소비하는 트렌드이며, 뒤처지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반면, 타일러 더든은 자기 파괴를 상징합니다. 예측할 수 없는 타일러는 쓰러져가는 건물에서 생활하고 말라와 충동적으로 섹스합니다. 물질세계의 완벽한 탈피와 온전한 자유를 추구하기 때문에, 성형외과에서 훔친 부자들의 지방으로 만든 비누(이 설정 자체가 물질세계의 파괴를 상징합니다)를 팔며 생활하고, 해당 비누로 폭탄을 만들어 사보타주와 파괴공작을 벌이기도 합니다.

물론 <파이트 클럽>의 가장 큰 반전은 내레이터와 타일러 더든이 같은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즉, 데이비드 핀처 감독은 영화를 통해 물질세계 속, 자기 계발과 자기 파괴 사이에 놓인 현대인을 제시합니다. 감독은 둘 중 무엇이 낫다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감독의 입장은 이 장면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레이터를 만난 타일러 더든이 인사를 나누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합니다. 이때, 타일러는 다음과 같은 대사를 합니다.

"Now, a question of etiquette: as I pass, do I give you the ass or the crotch?"
(매너의 딜레마군, 지나갈 때 엉덩이를 보여줘야 하나 가랑이를 보여줘야 하나?)

즉, 감독은 해당 장면으로 자기 계발과 자기 파괴는 "the ass"와 "the crotch" 정도의 차이일 뿐, 크게 다르지 않다는 입장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럼에도 감독의 입장이 궁금하다면, 영화 최후반부에 한 프레임에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영화 가장 마지막에 삽입된 남성 성기는, "the ass(엉덩이)"보다 "the crotch(가랑이)"에 가깝다는 감독의 생각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파이트 클럽>은 현대인의 실존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비슷한 구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먼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자신의 모든 철학을 담았습니다. 긍정과 춤, 자기 경멸과 결혼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시각을 녹여 한 권의 소설로 담아냈습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위버맨시입니다. 흔히 초인이나 슈퍼맨으로 해석되는 이 개념은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서 오로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인물을 뜻합니다. 니체는 책에서 초인이 되기 위한 정신의 세 가지 단계(낙타, 사자, 아이)를 설명합니다.

가장 첫 단계인 낙타는 순종하는 정신을 의미합니다. 도덕적 기준이나 덕성 때문에, 해야만 하니까, 외부의 압력 때문에 주어진 일을 참고 견디는 존재입니다. 이는 도덕적 복종 단계이며,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 단계에 해당합니다. 낙타 단계를 넘어서면 사자 단계로 진입합니다.

사자 단계는 자유정신을 상징합니다. 도덕적 복종에서 벗어나서 '자기(自己)'라는 주체가 생기는 단계입니다. 이 단계에서의 정신은 '원하는 것'이 생기고, 의지가 생깁니다. 사자가 원하는 것은 창조입니다. 그리고 창조는 파괴를 기반으로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자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용을 파괴해야 합니다. 용을 파괴하면 궁극적인 아이의 상태에 도달합니다. 아이는 새로운 기준으로 놀이를 만들고 삶을 즐기며(amor fati) 진정한 초인을 의미합니다.


이 세 가지 단계를 이용하여 <파이트 클럽>을 살펴보겠습니다. 초반의 내레이터는 돈을 벌기 위해 출근하고, 회사에서 시키는 일을 반복합니다. 이런 권태로운 삶은 낙타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타일러 더든을 만납니다. 타일러는 예측할 수 없지만 매력적입니다. 호불호가 명확하고, 마초적이며 주관이 뚜렷합니다. 내레이터는 타일러를 따라 주먹질을 하고, 폐가에서 생활하며 왠지 모를 해방감을 만끽합니다. 이때, 내레이터는 살아있음을 느끼고, 싫어하는 것이 명확해집니다. 이는 사자의 상태입니다.

물론 타일러 더든을 사자 상태의 인격화로 볼 수 있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타일러 더든은 용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겉으로는 낡은 신(물질세계)을 파괴하는 사자같이 보이지만, 타일러 더든의 파괴는 창조를 위한 파괴가 아닙니다. 그저 파괴를 위한 파괴일 뿐이죠. 내레이터는 타일러 더든이 만든 새로운 규칙을 거부하며 주관을 가지고 사보타주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합니다. 이 순간이 바로 내레이터가 그 자체로 사자 상태라는 증거입니다.


니트로글리세린으로 가득 찬 밴이 주차된 건물 꼭대기에서 내레이터는 자기 자신을 향해 총을 격발 합니다. 그 총격으로 타일러 더든은 최후를 맞이합니다. 이 장면은 사자가 용을 파괴하는 장면입니다. 그때, 말라 싱어가 다가오고, 내레이터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폭발하는 건물들을 바라봅니다. 그가 내뱉는 마지막 대사 "You met me at a very strange time in my life."는 내레이터가 초인이 되었으며 더 이상 타일러 더든에게 끌려다니지 않는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겠다는 선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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