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by 이기적 해석가

"그때 그 행동을 했었더라면", "그때 그 제안을 받았더라면", "그때 그 주식을 샀었어야하는데"... 우리는 이런 형태의 수많은 후회를 곱씹으며 살아갑니다.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의 삶이 더 낫지 않았을까라는 현실적이고도 슬픈 질문에 사람들은 다양한 상상력을 부여하고는 합니다. 그래서인지 시간여행을 다룬 다양한 영화들은 대체로 과거의 행동으로 현재를 바꾸려고 합니다. <빽 투더 퓨처> 시리즈와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대표적이죠. 개인적으로는 '시간과 무수한 선택의 기로에서 다른 선택을 했으면 더 좋은 결과가 있지 않았을까?'에 대한 질문의 답이 된 영화는 <인터스텔라> 였습니다.


<인터스텔라>는 사랑에 대한 영화이고, '부모는 자식의 유령이다'라는 것이 영화의 주제입니다. 영화는 차원을 통해 주제를 부각하기 때문에,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0차원은 점입니다. 가로축도, 세로축도 없는 그저 점의 상태이죠. 이 점들이 무수히 모여서 1차원의 선을 구성합니다. 축이 생겨 좌우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이 선들이 무수히 모여서 2차원의 평면을 구성하고, 평면이 모여 3차원의 공간을 만듭니다. 지금 설명드린 부분은 “적분”의 개념입니다. 단적인 예시로 3차원 정육면체의 부피를 구하는 방법은 밑면의 넓이를 구하고 높이만큼 곱하는 것이죠. ”높이만큼 곱한다”라는 말은 결국 밑면의 넓이를 “높이”번 더한다는 의미입니다. 같은 맥락으로, 4차원은 공간의 누적입니다. 누적된 공간이 구성하는 것은 시간이기에 4차원은 시간입니다.


<인터스텔라> 전반에 걸쳐 감독은 중력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중력은 차원을 초월하여 하위 차원에서 상위 차원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중력은 물질이 가진 질량이자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입니다. 마치 지구가 중심 방향으로 물체를 끌어당기는 것처럼 말입니다. 끌어당기는 힘, 두 사람의 몸은 떨어져 있어도 연결될 수 있게 만드는 힘, 그 힘은 바로 사랑입니다. 감독은 사랑을 중력에 은유하였고, 바로 그 사랑의 힘으로 차원을 초월하여 머피와 쿠퍼를 연결하였습니다. 더 나아가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4차원 시간의 누적을 사랑으로 상정하여 5차원의 존재는 사랑을 축으로 하는 우리 스스로라는 해답을 찾아냅니다. 그런 의미에서 머피의 시계는 쿠퍼의 사랑을 상징하는 상징물입니다.


이런 주제의식과 별개로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주목한 것은 '머피의 법칙'에 대한 크리스토퍼 놀란의 해석입니다. 흔히 '머피의 법칙'은 '가는 날이 장날이다'라는 속담과 비슷한 맥락에서 사용됩니다. 일을 계획했는데, 하필 그때 비가 왔고, 하필 그때 사고가 나서 계획이 틀어지는 상황에 대한 의미이죠. 그러나 <인터스텔라>는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접근합니다. 극 중에서 머피는 아버지 쿠퍼에게 왜 하필 이름을 머피로 지었느냐고 물어봅니다. 머피는 자신의 이름이 '머피의 법칙'이 연상된다면서 불운의 상징이 아니냐고 따지죠. 그때 쿠퍼는 이야기합니다.

"Murphy's law doesn't mean that something bad will happen. It means that whatever 'can' happen, will happen. And that sounded just fine to us."
(머피의 법칙은 나쁜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하는게 아니야.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지. 그게 우리 부부한테는 괜찮게 들렸어.)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라는 관점에서 삶을 바라보면, 조금은 위로가 되는 듯 합니다. 그때 이 선택을 했었더라도, 지금의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결과론적인 말은 사실, 그때의 선택이 최선이었다는 것을 역설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온전히 이해하면, 과거의 후회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 삶을 받아들이고 나 자신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주는 말이기도 합니다.


한때 미디어에서 '평행 우주' 붐이 불었던 적이 있습니다. 정확한 원인을 알 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로 추측하기에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평행우주에 대한 개념을 도입하면서 페이즈 3에서 페이즈 4로 넘어가며 세계관의 거대한 확장을 계획한 것이죠. 마블은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통해 과거의 행동이 현재를 바꿀 수 없음을 명확히 했고, 과거는 또 다른 평행 세계로의 이동이라는 설정을 도입했습니다. 나름 일리가 있고, 재미있는 설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평행우주를 돌아다니며 최선의 선택을 하고 싶어합니다.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원하고 지금 삶이 꼬인 것이 과거의 선택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 선택은 과거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음을 이해한다면 어느정도 삶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현재의 선택에 최선을 다 해야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즉, 혼돈의 변수에 그 어떤 혼돈을 대입한다고 할지라도,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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