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용하 기자
20년 이어진 메로나 vs 메론바 악연
식품업계 미투 관행에 균열 낼까
빙그레가 대표 아이스크림 ‘메로나’ 포장 디자인을 모방했다며 서주를 상대로 제기한 2심 소송에서 최근 승소했다. 1심 패소를 뒤집은 이례적 판결에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기술 장벽이 낮아 ‘베끼기’가 관행처럼 굳어진 식품업계에서 원조 기업이 미투(me-too) 제품 소송에서 이기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던 까닭이다.
빙그레는 1992년 메로나를 출시하며 멜론 맛 아이스크림 시장을 열었다. 그러나 서주의 전신 효자원 역시 ‘메론바’를 내놓으며 경쟁에 뛰어들었고, 두 제품은 포장 색상과 디자인이 유사해 표절 시비가 꾸준히 제기됐다.
빙그레는 2005년 판매 금지 가처분을 신청했으나 기각됐고, 2023년 제기한 소송에서도 1심은 패소했다.
하지만 지난 22일 서울고등법원은 “메로나 포장이 국내 시장에서 널리 인식된 상품 표지”라며 “메론바가 그 인지도를 활용했을 개연성이 크다”고 판결을 내려 빙그레의 손을 들어줬다.
빙그레가 20년 가까이 묵혔던 분쟁을 2023년에 다시 꺼낸 데는 산업적 이유가 있다.
우선 빙그레는 부정경쟁방지법 개정으로 상품 포장(트레이드 드레스)도 보호 판례가 누적되면서 승산이 생겼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편의점 PB상품이 강세를 보이며, ‘메로나=빙그레’라는 고유성을 지켜야 했고, 미국·중국·베트남 등에서 수출 간판으로 자리 잡아, 국내 판례 확보를 통한 해외 카피캣 방어에도 필요했다.
또 2022~2023년 ‘추억의 아이스크림’ 열풍으로 메로나가 다시 주목받으면서, 브랜드 자산 보호 필요성 또한 커졌다.
식품업계에서는 원조 제품이 성공하면 비슷한 맛·포장·콘셉트의 미투 제품이 잇따라 나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오리온 ‘초코파이’를 모방한 수십 종의 파이류, 삼양식품 ‘불닭볶음면’을 따라 만든 매운 볶음면, CJ제일제당 ‘컵반’을 겨냥한 유사 즉석밥 제품들이 대표적이다.
이들 사례 대부분에서 법원은 “공용 요소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라며 원조 기업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 때문에 이번 빙그레 승소는 업계에서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대법원에서 이번 판결이 확정된다면, 미투 관행에 제동하는 중요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짝퉁 수준의 노골적 모방”이 아니라면 여전히 미투 제품은 사라지기 어렵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업계 관계자는 “냉정히 보면 표절이지만, 동시에 원조 제품을 더 주목받게 하고 시장 전체 파이를 키우는 효과도 있다”라며 “기업들도 반드시 부정적으로만 보진 않는다”라고 말했다.
빙그레가 이번에 얻은 승소는 단순히 메로나 포장을 둘러싼 법정 공방이 아니라, 20년 악연의 해소와 브랜드 자산 수호라는 의미가 있다.
동시에 이번 판결은 국내 식품업계의 미투 관행을 시험대에 올린 사례로, 앞으로 유사 분쟁의 기준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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