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용하 기자
디지털 시대에 다시 주목받는 '펜'
모나미 등 문구업계 해외 전략 과제 여전
디지털 시대를 맞아 관심이 멀어져 가던 한국 문구 산업이 뜻밖의 계기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지난 25일(현지시각)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자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이 사용한 펜을 보고 “나이스 펜(Nice pen)”이라고 칭찬한 것이다. 미국 정상의 짧은 발언에 디지털 시대 K-문구 산업의 현주소와 과제를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칭찬한 펜은 제나일이 제작한 맞춤형 수제 만년필이다.
장미목·올리브목 등 고급 원목을 가공하고 천연 왁스로 마감하는 장인 공정을 거친 제품으로, 청와대 특별 의뢰에 따라 두 달가량 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문래동의 작은 공방에서 한 장인이 전 과정을 책임지는 방식으로 운영돼 온 제나일은 그동안 Etsy 등 해외 온라인몰에서 소량 판매되던 브랜드였다.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한국의 장인 브랜드’라는 이름을 국내와 전 세계에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흥미로운 사실은 제나일 펜의 잉크 카트리지가 모나미 ‘네임펜(Name Pen)’을 개조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펜 본체는 제나일의 수제 작품이지만, 필기의 심장부는 한국을 대표하는 대중 브랜드 모나미의 기술이 뒷받침했다.
이 때문에 일부 외신과 투자자들은 트럼프의 발언을 곧바로 모나미와 연결했고, 실제로 모나미는 직접 제작사가 아님에도 시장의 관심을 받았다.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필기구 시장은 2024년 약 142억 달러 규모에서 2034년 205억 달러로 성장하며 연평균 3.7%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동아시아 지역은 향후 전체 시장의 약 39.8%를 차지할 것으로 예측돼, 한국 역시 수요 중심지 중 하나로서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또 지난 2023년 한국의 문구용 필기구 시장은 약 2억2490만 달러였다. 2030년까지 연평균 3.3% 성장해 약 2억8200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프리미엄·수제 시장의 성장률이 높아, 제나일 같은 브랜드에 기회 요인이 크다.
다만 글로벌 점유율은 1%에도 미치지 못해, 모나미를 비롯한 국내 대형 브랜드들의 해외 전략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태블릿과 전자펜이 대세인 시대에도, 펜이 가지는 정서적·상징적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 필기는 단순 기록을 넘어 개인 정체성과 감성을 담는 행위로 소비자에게 자리 잡고 있다.
프리미엄 수제 브랜드는 ‘예술적 경험’으로, 대중 브랜드는 ‘합리적 소비’로 생존 전략을 모색한다.
나아가 스마트펜·디지털 필기구와 같은 신기술과 접목될 경우 K-문구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잇는 새로운 문화상품으로 성장할 가능성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K-뷰티와 K-푸드처럼 세계 시장을 지배하는 산업은 아니지만, K-문구는 작지만, 강한 문화 자산으로서 충분히 자리 잡을 수 있음을 이번 사건으로 증명했다"면서 "작은 펜 하나가 국가 브랜드를 높이고 산업의 미래를 열 수 있음을 보여준 셈"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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