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도시 내 고향 마산
예향의 도시 마산에서 결혼 전까지 살았다. 나의 20대까지의 삶이 온전히 이곳 마산에 남아있다. 때로는 아픈 기억도 있지만, 대부분은 아름다움과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추억으로 잘 간직되어 있다.
그동안 살기 바빠서 외면하고 살았던 고향이었다. 이제 86세인 친정어머니는 주름이 깊게 패인 할머니가 되었고 언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어머니를 자주 찾아뵙기 위해 고향 마산을 찾는다. 자주 오다 보니 내 고향 마산이 예술을 사랑하는 도시였고 예술인들이 많았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나도 20대에 예술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지만, 항상 그 주위를 맴돌곤 했다. 그림을 감상하고 음악을 듣고 연극 구경을 즐겼던 사람이었다. 그때는 그림을 그리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고 그 꿈을 위해 잠시 노력도 한 적 있다.
나의 인생이지만 내가 원하는 대로 살지 못했다. 결혼을 했고 세 아이를 낳아서 일과 양육을 동시에 해결하느라 나를 돌아보고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보다 밥벌이하느라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다. 이제 세 아이는 모두 성인이 되었고, 나의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자주 가지게 된다. 나를 위해 더 행복한 삶은 어떤 삶인지 중년인 지금 마음 깊은 곳에서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를 찾아가는 시간을 자주 가지게 된다.
아이들이 모두 성인이 된 후 혼자 있는지 시간이 많아졌고 나를 찾는 시간 중에 엄마가 자주 생각났다. 엄마의 품이 그리웠고 엄마의 품을 닮은 고향과 그리운 고향 바다가 생각났다. 지난 휴가 때 마산에 들렀고 예전에 자주 가던 통영과 거제도의 푸른 바다를 품고 돌아왔다. 깊고 푸른 바다에 나의 20대가 나타났다. 바다 가운데에서 배를 타고 바라보았던 푸른 해금강, 바다가 해금강을 품은 건지 해금강이 바다를 품은 건지 어느 것이든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파아란 아름다움 속에 내 청춘이 보였다. 함께 했던 친구들은 다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거제의 깊은 바닷속에 그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젊은 시절의 그들이....
이번 추석에도 역시 마산에 짐을 풀고 실컷 바다를 보고 왔다.. 추석을 지내기 위해서 왔다기보다 바다가 그리워 마산에 들렀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나에게 바다는 늘 그립고 설렘을 주는 대상이다. 바다에 대한 행복했던 추억이 있기에 그럴 것이다.
20대 때 가슴앓이할 때도 시커먼 밤, 마산 앞바다 부둣가에 혼자 있었다. 깜깜한 허공을 향해 하소연했고 마음을 달래기도 위안을 받기도 했다. 또 아이들이 어렸을 때 휴가철이면 친정 식구들과 왔던 곳이기도 하다. 원전, 저도, 구복, 장구마을, 수정 등 마산 외곽의 바닷가 어촌 마을에서 배를 빌려 바다 한가운데서 낚시를 하던 곳이기도 했다. 마산에 올 때는 부담 없이 들러는 곳이고 추억의 장소이다. 아이들이 전적으로 부모에게 의지했던 어린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함께했던 추억은 언제든지 되돌릴 수 있다. 추억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거니깐.
전날은 바다를 구경했고 오늘은 마산창동예술촌을 구경했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우연히 알게 된 후배를 통해 창동예술촌을 구석구석 구경할 수 있었고, 그날의 추억을 되살려 혼자 여유롭게 창동예술촌을 돌아다녔다. 내 청춘의 일부분을 보냈던 마산 창동이 이제 창동예술촌으로 다시 태어났다. 마산인으로부터 쓸데없는 짓을 한다는 얘기를 직접 듣기도 했지만, 내가 본 창동은 어떤 마을보다 아름답다. 따뜻한 마음을 녹여 만든 예술촌이라 나의 20대를 소환하기에 필요충분조건을 갖추고 있어서 가끔 방문하는 나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시는 곳이기도 하다.
강의 외 모든 작업은 나의 작업실 ‘애당’에서만 이루어지는데 오늘 창동의 한 카페에서 블로그 포스팅과 강의 준비도 했고 글도 썼다. 이례적이다. 글을 쓰고 강의 준비를 하는 것에는 까다로운 사람인데 오늘 작업실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20대 나의 놀이터였던 마산 창동이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살아 숨 쉬고 있는 내 고향 마산! 엄마의 따뜻한 마음과 추억이 함께하는 곳, 언제든지 돌아갈 고향이 있어서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