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앞에 기적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작년에 코로나로 한동안 강의가 멈추었다가 조금씩 시작되었고 매주 쉬지 않고 강의를 할 수 있음에 절로 감사기도가 나온다. 강의가 이루어지는 것 자체가 행복하고 감사하다. 올해도 밥먹고 약간의 여유를 부릴 만큼 강의는 이루어졌다.
얼마 전부터는 하루에 3강씩 하고 있고 4강을 한 적도 있다. 수첩에 빼곡히 적힌 강의 일정을 보고 또 본다. 혹시 잊어먹고 강의를 못 갈까봐 수시로 확인한다. 하루에 3강씩을 할 수 있는 것은 강의 의뢰가 들어올 때 내 시간에 맞춰서 강의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코로나 전에는 하루에 3강씩 한 적이 많았지만 코로나시대 꾸준히 하루에 2~3개의 강의가 가능한지 신기해서 스스로에게 묻기도 하고 지인 강사들이 부러워하며 물어보기도 한다.
“이게 가능한가?” 근데 가능하고 요즘 하루에 거의 3강씩 이루어지고 있다.
나는 집안 경제를 책임지는 생계형 강사이다. 세 아이를 키울 때는 정신없이 돈 버는 것에만 목적을 두고 살았고 경제적으로 심적으로 여유가 없이 앞만 보고 살았다. 이제 아이들은 모두 성인이 되었고 각자의 용돈은 스스로가 벌어서 생활하니 특별히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돈은 없다. 편히 쉴 수 있는 작은 집이 있고 경제활동을 하고 있으니 큰 걱정도 욕심도 없다. 바쁘게 강의를 다니고 있지만 강의 외 시간은 강의 준비를 하거나 차를 마시며 맘껏 여유로움을 즐긴다. 간혹 강의가 없는 날엔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다녀오기도 한다. 넘 피곤한 날은 종일 집안에서 뒹굴며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낸다.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아이들을 키울 때 느끼지 못했던 여유로움에 행복을 느낀다.
천주교 신자인 나는 하루를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끝낸다. 작년까지는 주로 나와 가족을 위한 기도를 했다.
“마음을 평온하게 해 주세요.”
“타인을 미워하지 않게 해 주세요.”
“건강한 삶을 살게 도와주세요.”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서 자신의 능력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이런 식의 기도를 끝없이 했다. 지금은 특별히 가지고 싶은 것도 누구를 미워하는 마음도 없다. 평온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에 감사기도를 하고 있고 기도 중에 타인을 기도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집이 없다는 학생이 갖고 싶은 집을 봤다고 해서 100일 기도를 해줬고, 마음이 아픈 친구를 위해 평온함을 가질 수 있게 도와 달라고 기도했고, 나를 아프게 한 친구를 위해 그 친구가 나로 인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기도했다. 어느 순간 나보다 내 주위의 지인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고 그럴 때 내 마음이 더 평온해 진다는 걸 느꼈다.
며칠 전 대학원 제자의 차를 타고 오다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었고 나는 요즘 나의 기도내용에 대해 학생에게 말했다. 학생이 하는 말이
“교수님께서 잘 되시는 것이 타인을 위해서 기도를 해서 그럴 겁니다. 성경에도 나와 있어요.”
그 말을 듣는데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을 위한 기도와 나를 힘들게 하는 이를 위한 기도를 의도적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 나를 힘들게 하는 그 마음이 그를 힘들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 기도 중에 자연스럽게 상대의 마음이 편안해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기도가 절로 되었다. 학생의 말처럼 의도하지 않게 나를 아는 이들이 평화롭기를 바라며 한 기도가 기적을 낳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새벽에도 타인의 평화로움을 위해 기도했고 저녁에도 할 것이다. 이 기적이 또 다른 기적을 낳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