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무어
유토피아라는 책을 아는가?
순교자이자 작가로 알려진 토마스 무어가 집필한 책으로, 책소개에 따르면 "라파엘 휘틀로다이우스와 나의 가상 대화를 통해 유토피아의 영토와 지형, 풍습, 사회제도, 형벌, 노예, 교육, 전쟁 등을 생생하게 묘사하면서 토마스 무어가 어떤 이상국가를 꿈꾸었는지를 보여준다"고 한다.
사실 나는 유토피아는 디스토피아다-라는 말은 지지하는 사람으로,
팩의 제목부터 끌리는 책은 아니었던 것 같다. (실제로 읽어보지도 않았다 ㅎㅎ)
오늘 하려는 이야기는 '유토피아'가 아니니까, 이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나는 천주교인인 토마스 무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토마스 무어는 '자신을 위한 기도문' 혹은 '유머를 위한 기도'로 유명한데, 어떻게 번역하느냐에 따라 내용이 조금 달라진다.
나는 두 번역본을 합치면 내가 진정 ’ 얻고자 ‘하는 내용이 된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여기서 ‘기도하고자’가 아니라 ‘얻고자’함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명확하다.
기도한다-라고 하면 현대의 많은 젊은 층의 반감을 사는 것 같다. 최근에 여러 사이비들이 언론에 노출되고 더 자극적인 소재거리를 위해 각색되다 보니, 종교 자체에 대해서 왜 사람들은 저렇게 객관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것에 자신을 바치고 희생할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할 능력이 없는 나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도 하는 것 같다.
거기에다가 종교는 자본주의의 시장에서 종교는 쉽게 동의하기 힘든 이야기들을 반복한다. 부자는 천국에 갈 수 없다느니, 가난한 사람을 위해 자신의 것을 나누라느니..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지금의 세대는 어쩌면 이해하기 힘든 것이 종교인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종교는 조금 다른 의미다. 나는 나약하고, 정의롭게(내 정의에 대해서도 나중에 정리해서 글을 써보려고 한다) 살기 위해서는 장치가 필요하다.
종교는 나에게 그런 ‘장치’이다. 매주 스스로를 다잡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고민하게 해주는 장치.
아래 내용도 마찬가지로, 공감되지 않는 수많은 기도문 중에 내 눈을 잡아끌고, 스스로 되뇌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 준 내용이다.
만약 아래 내용이 기도문이 아니라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가 했다면 아무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을 텐데, 아쉽기도 하다.
누군가에게 간청하지 않더라도, 스스로를 일깨우며 점검하는 그런 장치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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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저에게 건강을 주시되 필요한 때 의미 있게
사용할 수 있도록 그 건강을 잘 보전케 해 주소서.
저의 영혼을 거룩하게 하시고
선하고 맑은 것을 알아보게 해 주소서.
악에 굴복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말게 해 주시며
사물을 자연 질서대로 지킬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할 구 있게 해 주소서.
저에게 지루함은 낯선 것임을 일러 주시고,
불평, 불만, 한숨 그리고 탄식을 알지 못하는 영혼을 선사하소서.
제가 이 세상에서 나만 잘 되기 위해 너무 많이 고민하는 것을 허락하지 마소서.
행복하게 살며 그 행복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눌 수 있도록
저에게 유머를 이해하는 친절과 풍자를 포용하는 은혜를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