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 찾기 (1)

모태 신앙

by Hi my name is

나는 태어나자마자 유아세례를 받았다.

그 예식은 내 기억에 없지만, 평생 내가 짊어질 세례명도 받았다.


기억도 없을 적부터 엄마 손과 할머니 손을 잡고 찾아간 성당에서 나는 제일 작은 신자였던 것 같다.

제일 우렁차게 모든 기도를 함께했고, 예쁨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사실 누군가를 믿는다거나,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가졌다거나 그랬던 적은 없다. 성경 내용을 줄줄 외고 있었지만 말씀이 가슴에 와닿았던 것도 아니고. 그냥 모두가 예뻐해 주는 공간이기에, 그리고 가족들과 손을 잡고 가는 당연한 곳이었기에 성인이 되기까지 참 오래 다녔다.


조금 커서 신앙에 대한 선택권이 생겼을 때도 당연하게 나는 스스로 천주교인임을 고백했다. 내가 원할 때만 찾는 날라리 신자일지라도, 내가 기댈 수 있는 구석이 있다는 게 좋았다.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내 나약함을 모두 고백하고, 질책받지 않을 수 있음이 좋았다.

그 무엇도 바꾸지 못할지라도, 내 나약함을 정면으로 마주 볼 수 있는 곳이 있음에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감사할 줄 아는 삶을 살도록, 신앙은 나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궁금했던 게 있다.

[순교]

그들은 어떻게 목숨보다 신앙을 소중히 할 수 있었는지. 어떻게 그렇게 그 모진 고문을, 그리고 죽음을 감내할 수 있었는지.

그들은 선택받은 자들이었던 것인지. 그들은 선택받은 자로써 행복했는지.

나는 선택받지 못했는지.


오늘은 103위 성인 중 한 명인 정 샤스탕 야고보 성인의 일화를 들었다. 1827년 조선 선교를 위해 두 번째로 입국한 서양인 선교사라고 한다. 밤새 고해성사와 미사를 드리고 또 다른 마을로 바삐 걸음을 옮겼다고 한다. 가해박해가 일어나자 그는 스스로 자수하고, 35세의 젊은 나이로 순교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는 마지막으로 천주의 영광과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일할 것이므로 어떤 일이라도 각오하고 있다고 말하며, “나는 기회가 오면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고통을 감수할 힘을 주님께 기대합니다. “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나는 그처럼 어떤 고통도 감내할 준비가 되었는지, 그 고통을 감수할 힘을 받을 수 있는 선택받은 사람인지 궁금했다. 사실 궁금하다기 보단, 나는 선택받지 않은 사람임을 알았다.


사실 세상에 내 존재가 어떤 의미를 가지길 바랐다. 많은 모래알 중 하나일지라도, 내가 쓰임새 있기에 이 세상에 나온 것이길 바랐다.

다른 사람의 의지로 내 삶이 흔들리는 것은 싫어하면서도, 내 삶의 끝에 누군가 안배해 둔 목적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랐다. 아니, 지금도 바라고 있다.


나는 그날을 위해 나를 끊임없이 갈고닦을 테니, 부디 당신의 뜻대로 이루어 지기를.

부디, 내 노력과 눈물이 헛되이 흩어져 사라지는 일이 없기를.


그것이 오늘 나의 다짐. Hi, my name is 빛나고 싶은 모래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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