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처음에는 단순히 환경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매너리즘에 빠져 삶이 무료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세상에 아직 필요하다는 증거를 얻고 싶었다.
그래서 이직을 결심했다.
모두가 내 이직을 말릴 만큼 좋은 사람들로 가득한 좋은 곳이었지만, 나는 밖에서도 내가 쓸모 있음을 알아야 했다.
내로라하는 대기업에 지원했지만 줄줄이 떨어졌다. 내 자신감도 같이 떨어졌다.
정말 마지막으로 지원한 회사에 합격했다. 대단한 대기업은 아니고 중견기업이었는데, 내 노력과 능력이 고작 중견기업에 밖에 닿지 못한다는 사실이 절망적이었다.
그래도 이직을 했다. 새로운 환경과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일이 필요했다. 나에게서 도망가기 위한 핑곗거리가 필요했다.
일은 더 바빴고, 사람들은 낯설었으며,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하는 일이 많았다. 입으로는 투덜대며 피곤하다고 할지언정 녹초가 된 퇴근길은 나와의 싸움에서 평화로웠다.
이런 한순간의 외면은 절대 내 무너짐을 막아주지 못했다. 오히려 체력은 떨어졌고, 마음의 여유가 사라졌으며, 시간은 부족했고 피로는 쌓여갔다.
내 전력이 약화된 채로 다시 내 무너짐을 마주해야 하는 시간이 왔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내가 왜 싸워야 하는지, 왜 이 싸움에서 이겨야 하는지. 머릿속이 하얘졌다.
결국 변한 건 그 무엇도 없었다.
그냥 덮어두려고 하는, 덮어두는 방법밖에 모르는 나만 그 자리에 있었다.
차라리 모두가 나에게 실망하고 떠나갔으면 했다. 그럼 내 부채도 함께 사라질 테니까.
답이 없는 삼류 인생이 속편해 보였다. 그렇게 살아갈 용기도 없으면서.
소리를 지르면 나아질까 노래방에 갔지만 후련하지 않았다. 술을 입에 잘 대지 않는 내가 술에라도 기대려고 했다. 다행히 술에 기대기엔 술이 참 안 맞았다.
살아있다는 감각을 느끼고 싶어 고통을 찾았다.
내가 아픈걸 지독히도 싫어하는 내가 고통을 찾다니. 스스로 위화감을 느꼈다. 아, 내가 정말 많이 무너졌구나.
친구의 꼬드김에 못 이긴 척 모든 것을 다 뒤로 미루고 롤러코스터를 타러 갔다. 그 순간만큼은 낙하하는 감각이 나를 살아있다고 느끼게 해 줬다. 근래 가장 즐거웠던 3분이었다. 내가 살아있었던 날.
담담히 나를 고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비록 거창한 서사는 아닐지라도.
어쩌면 누군가에게 보내는 sos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