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럽게 고관절 인공관절 수술을 하게 된 아빠는
일상생활이 불편해지자 좌절하기 시작했다.
누구보다 노는 것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고 주변에 친구들이 끊이지 않았던 아빠는
몸이 불편해지면서 일순간에 모든 사회생활에서 한걸음 뒤로 물러나
우울감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됐다.
그래서 가까이 한 술.
아무리 말려도 엄마 몰래 술을 드셨고 들키지 않기 위해서는 빨리 마셔야 했기 때문에
급하게 빨리 마신 술은 알콜릭에 빠지기에 충분했고 습관처럼 마시던 술 때문에
간이 망가져서 간경화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
얼굴은 점점 흑빛으로 변해 갔다.
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하는 일상이 계속됐다.
지금은 제한이 없어졌지만 그 당시에는 180일이라는 의료보험 적용시기가 있어서
그 시간을 벗어난 기간에는 의료보험을 적용받지 못해 전액 비급여로 치료를 받아야 했다.
약은 먹어야 했기 때문에 항상 그 180일이라는 일수는 넘어가는 일이 예사였고
힘든 집안형편에 가끔은 원망도 했었지만 그래도 아빠가 계속 내 곁에 계셔 주기를 바랐다.
나의 바람은 계속되지 못했다.
사람이 더 이상 가망이 없다는 선고를 받고는 잠시나마 기적이 일어나는 것 같다.
영영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할 것 같던 아빠는 갑자기 병세가 호전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나아서 퇴원했다고 할 정도로 몸이 좋아져서 퇴원을 하셨다.
항상 마음을 졸이며 지켜보던 엄마는 잠시 마음을 놓으며 친정에 일이 있어 다니러 간 어느 날,
아빠는 병원에 들어가 있느라 몸이 많이 더러워졌다며 목욕을 하고 머리도 말끔히 정리하고 염색까지
깔끔하게 하셨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들을 친목계를 한다며 모두 불러 모아
그놈의 술 한잔도 하고 하하 호호 즐거운 시간을 보내셨다. 계산도 정확하게 하셨다.
빌린 돈은 갚고 받을 돈을 받고.
그냥 아무 일이 없던 일상의 그 어느 날이었다.
갑자기 울먹이는 목소리의 엄마한테서 연락이 왔다.
"빨리 아빠한테 가봐. 아빠가 이상한 소리를 하신다."
"무슨 소리?"
"뭐 하냐고 물어보니 피 토하고 있지~~ 이렇게. 엄마가 빨리 올라갈 거니까 아빠한테 가봐라"
돌쟁이 딸을 둘러업고 아빠에게 갔다.
건물 관리를 하고 계시는 아빠에게 달려갔으나 관리실 입구에서부터 나는 무너져 내렸다.
입구부터 안쪽까지 너무나도 많은 피가 흥건히 쏟아져 있었다.
아직 의식은 있으신 상태였고 씩 웃으며 "왔냐?" 하시는데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119 구급차를 어떻게 타고 병원까지 갔는지 모르겠다.
간경화가 있는 사람은 간이 점점 굳어지며 피가 제대로 순환이 안된다고 한다.
돌아가신 사인은 식도 적맥류. 식도의 메인 적맥이 제대로 순환되지 않아 피가 터지는 병이라는 걸
아빠가 돌아가실 때 알았다.
온몸의 피를 3~4번 갈았나 보다. 급작스럽게 몸속에 들어가는 피로 인하여 쇼크가 와서
결국 돌아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평생을 한량처럼 살아오신 아빠의 한마디에 눈물을 펑펑 흘리던 나는
잠시 웃음을 참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떠듬떠듬 나를 부르시는 아빠.
귀를 갖다 대고 하시는 말씀에 그러면 안 되는데 웃음이 났다.
"내 주머니를 봐봐"
"왜요?"
"35만 원이 있을 거야." 손을 넣어 뒤적여보니 돈이 달려 나왔다.
"이게 뭔데요?"
"응.... 그.. 거.... 아빠가 친구들한테 받... 은.. 빌려 줬던 돈.."
엥???
"그.. 거 엄마 모르는 돈이야... 그거 걸리면... 나.. 죽어..."
헉, 아빠, 지금 피를 토하고 수혈을 받는 긴박한 상황인데.
죽음을 앞두고 있는 상황인데.. 걸리면 죽는다니. 참... 아빠는 끝까지 어쩔 수가 없었다.
지금은 이렇게 추억하며 잠시나마 웃음을 떠올릴 수 있는 시간이지만
당시에는 그 급박했던 상황에
"알았어요. 아빠, 내가 잘 가지고 있을게요." 안심을 시켜 드렸으나
결국 그 돈은 아빠의 장례식 비용에 포함되고 말았다.
그렇게나 아빠의 음주를 싫어하던 엄마는 아빠의 무덤 앞 땅속에 소주를 한병 묻어주셨다.
나 죽기 전 애들한테 민폐 끼치지 않고 정리하고 간다는 엄마는 10년을 채우고 아빠의 유골을 화장하여
수목장으로 나무와 풀과 흙과 함께 지내라며 묻어 주셨다.
매년 3월이 돌아오면 아빠가 생각난다.
내가 기억하는 어릴 적부터의 아빠는 항상 60살에 죽을 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다.
결국 60살이 되는 해에 우리 곁을 떠나셨다.
어느새 아빠를 떠나보냈던 엄마의 나이를 내가 맞이하고 있다.
엄마의 나이가 아주 많았다고 느껴졌었는데
한참 노후를 이야기하고 아이들 키워놓고 두 분이서 즐겁게 사셔야 하는 시기에
아빠는 먼저 하늘로 가셨다. 너무나 젊은 나이였다.
그걸 나는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