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량(閑良).
돈 잘 쓰고 잘 노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또 일정한 직사(職事) 없이 놀고먹는 말단 양반 계층을 뜻하는 말.
처음 이 단어를 접했을 때, 나는 묘한 매혹을 느꼈다.
마치 내가 추구하는 삶의 태도를 함축적으로 담아낸 듯했기 때문이다.
돈 잘 쓰고, 잘 노는 사람. 얼마나 매력적인 정의인가.
그러나 곧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과연 돈을 잘 쓰고, 잘 놀았던 사람인가?
돌아보면 그렇지 않았다.
쓰고 싶었던 돈은 늘 부족했고,
노는 성격도 아니어서 결국 ‘한량’이라는 이름은 내 것이 아니었다.
불혹을 언제 넘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이제는 말년을 바라보며 과거를 추억하는 일이 더 많아진 나이가 되었다.
돌아보면 내세울 만한 사건도 없이 그저 그렇게 살아온 인생이었다.
그렇기에 인생의 후반부에 접어든 지금,
나는 어떤 모습으로 마지막을 맞이할까 하는 고민이 밀려온다.
나는 모순된 사람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뒹굴거리는 것을 꿈꾸면서도
가만히 있지 못해 이것저것 일을 벌인다.
궁금증을 참지 못해 덤벼들었다가 호기심이 채워지면
활활 타오르던 열정이 소방호스 물을 들이부은 듯 금세 식어버린다.
에너지가 넘치지만 조절이 잘 되지 않아,
좋게 말하면 호기심 많은 사람이고,
나쁘게 말하면 지구력 떨어지는 중도 포기자다.
그러나 나는 포기한 일들조차 경험의 창고에 차곡차곡 쌓아둔다.
언젠가 꺼내어 나머지를 채울 수 있으리라는
자기 위안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아이고, 인생을 어떻게 이렇게 살았니.”
스스로에게 묻는다.
하지만 곧 답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좋은 점은 더 개발하고,
나쁜 점은 줄여가며 남은 인생을 살아간다면
마지막 순간에는 또 다른 세계를 살고 있지 않을까.
아이들이 독립하고,
시간을 오롯이 나에게만 쓸 수 있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나이가 들면 불안해지는 것들이 있다.
건강, 치매, 경제력.
걱정은 늘 따라붙지만, 그것들을 요리조리 피해 가며
나는 꿈꾸는 한량을 꼭 이루고 말리라 다짐한다.
나는 할 수 있다.
아자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