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개로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것들이 있지. 작고 아름다운 것들. 요즘엔 그런 것들로 공백을 채워나가고 있어. 세 줄로 된 글. 삼행시라고나 할까. (중략)
그때 딱 몇 줄만 쓰는 거야.
발톱 깎다가
눈물 한 방울
너 거기 있었구나. 멍든 새끼발가락
-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중 p.67
미야, 자네는 도무지 쓸 수 없을 때 어떤 글을 쓰겠나?
쓸 수 없는 때라..
일단 저에게 그런 때가 언제인지 생각해봅니다.
저는 일상이 정리되지 않고 복잡할 때,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쓰는 일에 집중할 수 없을 때, 만사가 귀찮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글 쓰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동안은 그럴 때면 그냥 쓰는 것을 멈추고, 아니 포기하고 쓰지 않았지요.
선생님의 질문을 통해 쓸 수 있는 용기에 대해 마음을 정리하고, 써야 하는 이유를 계속해서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처럼 쓸 수 없을 때 쓸 수 있는 글을 비상식량처럼 준비해보려고 합니다.
얼마 전 <달러 구트의 꿈 백화점>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꿈을 꾸는 일련의 과정들이 다양한 종류의 꿈을 판매하는 백화점이라는 가상의 장소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재미있게 풀어낸 소설입니다.
꿈속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을 읽으며 글을 쓸 수 없을 때 꿈속 이야기들을 써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꿈속 장면임에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기억들을 정리하며 현실과 꿈 사이 그 어딘가쯤 존재하는 '나'의 정체성을 찾아보고 싶습니다.
제가 만나는 사람들을 자세히 관찰하고 캐릭터화 해보는 글을 쓰면 좋을 것 같습니다. 특히 학급에서 만나는 아이들에 대해서요. 저마다 다른 성향과 특징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을 글에 담아 오래 기억하고 싶습니다. 아직 묘사에 자신이 없지만 글을 쓰기 힘들 때 관찰한 것을 그저 나열해가는 것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삼행시도 좋습니다.
작고 아름다운 것들을 발견하기 위해 애쓰는 눈.
그것을 문장에 담는 애정 어린 손도 훈련이 필요하겠지요.
글을 쓸 수 없을 때도 글을 쓰는 행위가
어쩌면 나태해지는 나를 일으키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주는 '응원가'같은 거구나!라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