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야 Apr 07. 2022

[이어령이 묻고 미야가 답하다]4. 함께 먹는 공동체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제자들과 그 유명한 최후의 만찬을 하잖아. 내 몸이 빵이고, 내 피가 포도주니, 나를 먹으라고. 그게 죄의 종말이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먹으라는 말씀. 기독교에서는 빵과 포도주를 나눠 먹으며 영적인 공동체로 거듭나지. 먹는 것에서 시작해 먹는 것으로 끝나는 게 구약과 신약의 하이라이트야. 우리 삶도 그래. 사는 게 먹는 거지. '함께 먹는 공동체'는 끈끈해."

-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p.74


" 미야, 자네에게 <함께 먹는 공동체>는 어떤 의미인가?"



 솔직히 저는 먹는 것에 삶의 가치를 크게 두는 편은 아닙니다. 어떤 음식이 너무 먹고 싶고, 꼭 먹어야 되는 '식욕'이 남들보다는 덜한 것 같아요.


하지만 'E'성향인 저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 편이라 함께 모여 식사하는 자리를 참 좋아합니다. '먹는 행위'보다는 '함께 먹는 사람'에 더 의미를 둔다고 보는 것이 맞겠네요.


사실 코로나가 지속되면서 '함께 먹는'행위가 '죄'로 여겨지는 사회적인 분위기 때문에 힘들었습니다. 저에게 '식사'는 그저 배를 채우는 행위만으로 만족되지 않았습니다. 함께 하는 사람들과의 즐거운 대화, 그 시간을 통해 알게 되는 사람들의 일상과 삶을 음식과 함께 나누는 것이야말로 저를 채우는 진짜 '식사'라고 여겼던 것 같습니다.


한국에 돌아와 헝가리에서의 삶을 그리워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함께 먹는 공동체' 때문이었습니다.


몇 가정 되지 않는 교회 식구들과 매주 주일마다 비빔밥 재료를 준비해 예배드리러 온 모든 사람들을 챙기며 함께 식사하던 그때가 종종 생각이 납니다. 눈물을 한 바가지 쏟아내며 양파 2킬로를 썰고 볶다 보면 '매주 이렇게 재료를 준비하는 게 너무 버겁고 힘든데, 꼭 함께 점심을 먹어야 하나?' 반문하며 투정 부릴 때도 있었지만, 준비해 온 꾸미를 나눠 담고 계란 프라이를 부쳐 얹어 낸 비빔밥을 맛있게 먹으며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이 그 모든 수고로움에 대한 보상이었습니다.

따뜻한 봄날 꽃가루가 휘날리든 말든 교회 정원에 테이블을 깔아 놓고 삼겹살 파티를 하던 날 아빠들은 고기를 굽고, 엄마들은 쌈채소를 준비하고, 아이들은 먹는 것보다는 노는 게 더 좋은 나이라 잡기 놀이를 하며 뛰어다니던 그 시간들도 참 그립습니다. 헤세가 사랑했던 유년시절의 따뜻한 기억처럼 저에게 헝가리에서의 함께 먹고 이야기 나누던 시간의 기억들은 돌아가고픈 옛 추억의 한 자락을 넘어 여전히 선명하게 그려지는 그립고도 정겨운 장면들입니다.


베토벤 하우스와 괴될레 씨씨궁전에서의 봄소풍에도 음식이 빠지면 섭섭하지요. 김밥, 골뱅이무침, 불고기, 계란말이, 쏘야, 캔터키 치킨까지 골고루 차려 돗자리 위에서 삼삼오오 모여 먹으며 나누던 이야기들은 기억나지 않지만 함께 한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들은 신기하게도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이번에 코로나에 확진되고 격리된 상황에서 숯불고기와 홍게, 여러 가지 음식들을 챙겨 집 앞에 가져다주시는 교회 공동체를 통해 "함께 먹는 공동체"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새기게 되었습니다. 함께 먹는 공동체는 그저 무언가를 함께 먹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 정과 사랑으로 넉넉하게 채워지는 사랑의 공동체라는 것을요.


함께 먹는 공동체와 나눈 식탁이 내 삶에 얼마나 많은 위로와 기쁨을 주었는지, 그 속에서 나눈 사랑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어 감사합니다.


선생님.

"함께 먹는 공동체"를 통해 저는 위로받고, 기쁨을 나누며, 힘든 시기를 견뎌냈습니다. 그 속에서 나누었던 사랑과 섬김을 기억하며 위로하며 기쁨을 나누는 행복한 공동체를 계속해서 유지해 가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이어령이 묻고 미야가 답하다]쓸 수 없을 때 쓰는 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