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야 Jun 22. 2022

인생 최대 위기의 순간 - 처음이자 마지막 알바

대학시절 친구들이 아르바이트로 바쁠 때 선뜻 아르바이트를 다시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아 차라리 공부를 더 빡세게 해서 전액 장학금을 받는 쪽으로 목표를 잡자고 나름의 합의를 했다. 다행히 학교 다니는 동안 계속해서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으니 '그 사건'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것인가?


학교 입학하고 첫 여름 방학에 동네에서 멀지 않은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오전 늦게 가게 문을 열고 이른 오후까지 커피나 음료를 만드는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지금처럼 프랜차이즈 형태의 예쁘고 세련된 카페가 아니라 장미꽃무늬 벽지에 알록달록한 무늬가 있는 벨벳 소파가 있던 커피숍이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아르바이트 장소다.


여느 때처럼 11시쯤 가게 문을 열고 뜨거운 물을 끓이고 있는데 종소리가 울리며 남자 손님 하나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일행을 찾는 듯 가게 안을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주문을 하려고 카운터 앞에 선 손님.

"조용히 해! 안 그럼 찌른다."

그는 손에 칼 하나를 들고 있었다. 가정에서 쓰는 과도나 식칼이 아니라 금장에 칼날이 제법 길고 뾰족한 칼, 종종 조폭 영화 같은데 나오는 칼이라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순간 눈앞이 깜깜해졌다.

어떻게 이 위기를 모면해야 하지?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기도를 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저 좀 살려주세요. 너무 무서워요.'

순간 그 강도는 카운터에 있는 돈을 뒤지고 챙기는 데 걸리적거린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카운터 뒤쪽으로 보이는 창고 쪽문 쪽으로 나를 밀더니 쪽문 안에 들어가 있으라고 매서운 눈빛으로 소리쳤다.


창고 안에는 100원짜리와 500원짜리 동전을 모아 둔 자루와 미리 사 둔 커피와 차, 청소용구 같은 것이 들어 있었다. 가로 세로 20센티미터 정도의 작은 창이 하나 있고 안에서 문을 잠글 수 있는 철문이 하나 있는 작은 창고. 나는 창고로 들어가자마자 문을 잠갔다.

"문 열어!"

강도는 문을 잡고 흔들었다.

혹시나 문이 열리면 어쩌나 두 손으로 문을 꽉 쥐어 잡고는 후들거리는 다리에 억지로 힘을 주고 서서 나도 큰 소리로 외쳤다.

"소리 지를 거예요!"

"소리 지르면 문 열고 죽인다."

"문 안 열려요. 소리 지를 거예요! 얼른 가세요."

한참 문고리를 잡고 이리저리 돌리고 흔들어보더니 제법 튼튼한 철문이라 안 열리겠다는 판단이 섰는지 강도는 노선을 바꿨다.

"지금 나갈 건데 소리 지르면 가만 안 둬! 조용히 해!"

정적과 함께 찾아온 대치 상황.


이건 진짜로 나갔는지, 아니면 나간 척을 하고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 쿵쾅쿵쾅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와 뛰고 있는 듯 호흡이 진정되지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종소리가 울렸다.

'나간 건가? 아니면 문만 열었다 닫은 건가?'

"누구세요?"

"네? 어디세요?"

"밖에 누구세요?"

"주인 안 계세요?"

"뭐야? 무슨 일 있나?"

"몰라. 사람은 안 보이고 목소리만 들리는데?"

항상 오픈할 때 커피를 사러 오는 커플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살았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가게 안에 누구 다른 사람은 없나요? 좀 전에 강도가 들었거든요. 경찰 좀 불러주세요."

"여긴 우리 둘 밖에 없어요. 강도가 왔었어요? 괜찮아요? 경찰 불러드릴게요. 일단 심호흡 좀 하세요."

커플들의 전화로 경찰이 가게로 출동했다.


경찰은 범인의 인상착의를 묻더니 나를 경찰차에 태우고는 주변 순찰을 했다. 범인이 보이면 바로 말해달라고.

사실 온몸에 기운이 쫙 빠지고 내 정신이 아닌 상태라 범인을 찾아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어디선가 다시 그 강도를 마주칠까 두려운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강도가 나가자마자 바로 신고를 해야죠. 전철역 부근이라 이미 멀리 도주한 것 같은데."

"나갔는지 가게 안에 있는지 알 수가 없어서요."

"일단 가게로 가서 조서를 좀 씁시다. 신고 들어온 거라 그냥 넘어갈 수가 없네요."


그때부터 시작된 조서 쓰기는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진행되었다. 물었던 걸 물어보고, 또 물어보고 말이 바뀌는지 아닌지를 확인하려는 것인지 계속해서 묻고 또 물었다. 긴장이 풀리며 몸에 힘이 없고 열감이 느껴지기 시작해서 너무 힘이 들었다.

"계속 설명해 드렸는데 언제까지 써야 하나요?"

"여기 사장님은 언제 나오시죠?"

"이제 곧 오실 거예요"

"사장님이랑 얘기를 좀 해야겠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돈을 받으려고 계속해서 조서를 쓰며 시간을 끌었다고, 아는 검사가 있어서 전화했더니 바로 조서 정리하고 경찰서로 복귀했다며 사장은 강도보다 경찰들이 더 도둑놈이라며 화를 냈다. 그리고 난 그날부로 해고되었다. 강도가 들었으면 뜨거운 물 끓이던 걸 확 쏟아부어버렸어야 지 카운터를 다 터는 동안 뭘 했냐며, 내 안위와 상태는 전혀 관심이 없던 사장의 말이 칼보다 더 날카롭게 마음을 찔렀던 것 같다.


한동안 몸살을 앓았고 일상생활로 복귀하기까지 시간이 제법 지나야 했다.


처음이자 마지막 아르바이트는 트라우마를 남기고 해고되며 끝이 났고, 이후로 선뜻 아르바이트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 두려움의 시간도 지금 돌이켜보면 감사로 기억된다. 하필 그때 강도를 만났으나, 우연처럼 필연적으로 창고에 가두게 하시고, 안에서 문이 잠기는 창고에 갇혀 보호되게 하셨으니 말이다. 또 다른 날보다 이른 시간 가게를 찾은 단골 커플 덕분에 빨리 위기를 넘길 수 있었던 그 모든 상황들이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날 지키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위기를 만날 때가 있다. 매일의 크고 작은 위기 가운데서 한결같이 나를 지키고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 위기의 때 의지하고 신뢰할 유일한 분, 주님이 있다는 것이 나를 평안하게 하고 두려움에 떨지 않도록 돕는다. 지나간 일을 글로 옮기며 생각해 본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지금 내가 여기 있구나.

앞으로의 인생도 언제나처럼 그렇게 지키시겠구나.

평안한 오늘을 당연함이 아닌 감사함으로 살아야겠구나.


작가의 이전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 10가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