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실행
신고
라이킷
66
댓글
32
공유
닫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브런치스토리 시작하기
브런치스토리 홈
브런치스토리 나우
브런치스토리 책방
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캐리소
Oct 12. 2023
하루의 얼굴
시간과 강연 사이
오늘은 아주
오랜 시간 밖에 있어야 할 날입니다.
제 퇴근
시간
은 3시경인데 약속된 강연을 듣는 시간은 7시이기 때문입니다.
근무하는
곳에서
집까지는
열일곱
정거장이
고 정류장에 내려서도 10분 정도를 걸어 올라가야만 집에 들를 수가 있습니다. 그런 연유로 집에 들렀다 가기에는 피로도가 꽤 짙어지게 됩니다.
지금의 제 컨디션으로서는 무리일 것 같습니다. 어제부터 장염약을 먹고 있기 때문에 몸의 상태도 살펴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가까운 도서관으로 갑니다. 시간을 맘껏 쓸 수 있는 장소로 그곳이 최적이니까요.
근데... 이런
!
신호가 오는군요.
역시
도서관은 제 변비탈출 장소로 최적입니다.
급히
화장실을 찾은 저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키가 껑충하니 크고 마른 60대 정도의 남성이 여자화장실
안
쪽에 서서 당당하게 통화를 하고 있지 뭡니까.
저는 다시 한번 화장실 표시를 확인하고 그분에게 화장실 위치를 잘못 찾으셨다고 얘기하고 싶었으나 갑자기 급한 신호가 더
심
해
지는 것 같아 그냥 냅다 위층으로 뛰었답니다.
급한 일을 해결하고 나니 만사가 여유롭군요.
이래서 늘
도서관이 제게는 놀이터고 쉼터고 화장실이고 그렇습니다.
7시 강연에는 한 스무 명 남짓 모인 것 같습니다.
제가 앞에 앉아 있으면서 내내 뒤를 돌아보지 않았지만 뒤의 공기와 숨소리, 간간이 들려오는 인기척으로 인해 그렇게 어림합니다.
작은 강연장 안에서 저는
태지원 작가님의 그림 이야기에 훅 빨려 들어갑니다. 이미 그분의 책을 읽은 독자로서 책 내용을 알고 있지만
육성으로
팍팍
데리고 다니는 패기에는 또 다른 맛이 있더라고요.
작고 마른 체구인 작가님의 목소리엔 힘이 넘치는 소년의 그것처럼 역동적인 질주가 배어 있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사람들은 돌아갑니다.
한 시간 남짓 작가님의 이야기에 손 잡혀 다니다가
실제
로 손을 맞잡았습니다.
작가님도 반가운지 금세 저를 알아보시네요.
정말 잘 들었지만 제대로 표현할 줄 모르는 저는 어버버 하다가 꾸벅으로 마무리합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작별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탑니다. 돌아오는 긴 길에 뱃속이 부글거렸지만 강연의 잔상을 떠올리느라 조용히 그 시간을 참습니다.
타인을 이해하는 방법,
나를 이해하는 방법,
있는 그대로 자신의 쇠락함을 받아들이는 태도,
모든 사람은 자신의 짐을 짊어진 채
오래 달리기 중이라는 사실,
새로운 해체는 새로운 시작의 다른 이름임을 깨닫는 것
.
공통적이고 보편적인 인간의 삶에 대해 풀어내신 작가님의 이야기가 좋은 선생님의 따뜻한 지시봉처럼 오래 남습니다.
저는 이렇게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였는데 새로운 내일은 또 어떤 얼굴을 하게 될까요?
keyword
강연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