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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리소 Sep 06. 2023

몇 년 전의 어느 몇 달

이 시간 버스는 언제나 붐빈다.

초중고가 일제히 다 개학을 했고 더군다나 집 앞에 새로 신설한 초등학교까지 있어서 이 동네는 언제나 막히는 구간이다.

버스 앞문이 열리며 학생들이 올라탄다.

커다랗고 시원한 학생들 속에서 잔잔바리 키에 안경을 쓴 우리 아들이 보인다. 분명 자리에 앉아있는 나를 보았음에도 아무 반응이 없다. 나도 무덤덤하게 핸드폰으로 읽던 글을 다시 읽는다. 아들이 내릴 정거장이 세 코스정도 남았을 때 내 옆자리 아주머니가 버스에서 내린다. 작은 눈으로 어찌 보았는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아들이 내 옆자리에 앉는다.




안녕, 엄마 다녀올게.
너도 잘 다녀와.






아침, 우유에 시리얼을 말아 식탁에 앉는 아들을 뒤에 두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정류장까지는 7분 정도. 3분쯤 기다리니 내가 탈 버스가 온다.

거북이걸음을 걷는 버스.

역시나  고작 세 정거장 이동하는데도 20분이나 지나있다.

우리 집은 터널 근처에 있다. 

출퇴근 시간이면 원체 차가 막히는 동네라서 출근이나 통학하는 사람들이 터널 옆을 걸어가는 경우가 많다. 터널 끝에 다다르면 나오는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면  그만큼 시간을 벌 수가 있다.

느긋하게 일어나 아침까지 챙겨 먹은 아들은 터널을 걸어서 집 앞 정류장보다 네 정거장 뒤에 있는 곳에서 버스를 탔고 그 버스가 바로 내가 타고 있는 버스였다.


우린 버스 안에서나 밖에서 만나면 서로 쌩까는 모자다. 저어기 아들이 보여도 으로만 반가워하고 아들이 먼저 알은 체를 하지 않으면 나도 그냥 지나쳐간다. 오히려 아들의 동네 친구들과는 여기저기서 눈인사를 나눈다. 저 녀석들도 제 엄마에게 그럴까? 그럴지도 모르고 아닌 녀석들도 있겠지.


옆자리에 앉은 아들이 은근슬쩍 내 팔을 쓰다듬는다. 옆자리에 앉아서까지 모른척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도 내가 아들 어깨에 잠시 머리를 기댄다. 작은 얼굴에 쥐어뜯어놓은 여드름 자국이 안쓰럽다. 귓불에 보슬한 솜털이 바람에 흔들린다. 시간이 노란빛으로 흐르는 것 같다. 

조금 지나면 아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그때는 나도 또 다른 시간의 이면을 돌보느라 이렇게 함께 버스에서 마주치는 일도 없겠지? 혹시 마주치더라도 지금 이런 아침은 아닐 게다.

그렇게 생각하니 함께 가는 이 세 정거장의 결이 폐부에 선명히 새겨진다. 차창밖의 풍경이 슥슥 지나버리는 것처럼 잊히고 덮여서 다시 떠올려보아도 지금의 이 은 아니겠지.

몇 년 전의 어느 몇 달처럼.




너와 상담하러 다녔던 버스창밖 풍경이 지금은 가슴 한쪽에 시린 계절냄새로 새겨져 있다. 오랜 거리와 시간을 오고 갔지만 그 안에서 나는 너를 기다리는 방법을 배운 것만 같다. 수업이든, 치료든 너를 들여보내놓고 내 시간도 함께 여물어 갔으니까. 너와 갔던 곳곳마다 가슴속에는 쉬이 지워지지 않는 발자국이 새겨졌다.

미술치료, 심리상담,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약물치료.

치료라...

치료라는 수풀 속에 너를 향해 난 길을 내가 걸어갔다. 너라는 길을 걸어가 보지도 않고 섣불리 단정해버렸던 나를 치료라는 문이 안내한다. 지금도 촘촘하게 따라가고 있지만 그때보다는 산들한 길이다.





지금은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아들은 그때의 아이이기도 하고 또 아니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도 너와 나란히 걷고 싶은 마음이다. 기막히게 좋았던 날씨마저 실제로 느껴지지 않았던 막막한 그 차창밖의 풍경. 그걸 지금은 온전히 계절 그대로 만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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