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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리소 Nov 01. 2023

전사의 얼굴로 연주하다

<사는 게 만약 뜨거운 연주라면>


그녀를 실제로 만난 적은 없다. 첫 번째 시집 '오늘이라는 계절'로 먼저 만났고 이메일로 만났고 목소리로 만났다. 그런데도 우리는 많이 끈끈한 사이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나는 그녀의 시를 한동안 빠져있던 캘리그라피로 그리고 또 그리고, 오래오래 그녀의 시를 입속에서 굴려보며 시간으로 그렸던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시집이 시와 세상에 명징하게 눈을 뜬 첫걸음이라면 두 번째 시집에서 그녀를 두르고 있던 과거의 기억과 아픔을 날 것 그대로 만난다. 읽으면서 아팠고 상처받았으며 그녀의 시퍼런 생채기에 가만히 손을 대보기도 하였다. 그 마음을 하나하나 만나볼 때 바라보던 시선에서 저만치 멀어지는 구름을 발견하듯 시인은 이미 그것에서 빠져나온 관조의 눈빛을 보이기도 한다.


1부 '사는 게 만약 뜨거운 연주라면'에서 나는 그녀의 조용한 절망과 고요한 울음을 듣는다. 불행씨에게 걸려 '또다시 넘어질까 봐 온 힘을 다해 계속 도망치는'(사는 게 만약 뜨거운 연주라면) 과거에서 '깨뜨려 주세요'(컵독)라고 외치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 목소리가 반가울 때쯤 역시나 배추의 여정에서 '숙성'(p.14)의 욕구를 보았다. 그럴 때 안쓰러운 마음을 밀어내고 나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어본다.
'유일한 노래가 되어보고'(사는 게 만약 뜨거운 연주라면) 싶은 시인의 바람도 곳곳에 포자처럼 놓여있다.







상처로 얼룩진 그녀가 엄마의 장례식장에서 고단한 잠이 들었을 때 밥은 챙겨 먹으라던 엄마. '고작 그거 하나 말해주려고' 딸의 꿈에 나타난 엄마의 마음. 그게 어떤 깊이인지 자식을 가진 엄마는 안다. 그 마음이 만져져 왈칵 울음이 나오기도 했다.


고통의 얼굴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눈은 진실의 또 다른 문을 열 용기를 얻는 법이다. 절대 기권할 수 없는 생의 연주장에서 결국 승리를 거머쥐는 시인은 지금도 승리 중임을 믿는다. 그만큼 그녀가 미덥다. 인스타 피드에서의 그녀는 보석 같은 두 딸과 많이 행복하고 짧게 힘들어 보인다. 그곳에서도 그녀는 보이는 것 이면에 새겨진 일상의 진실을 밝게 드러낸다. 지나간 생이 안겨주지 않았던, 기적이나 요행 따위 없는 평범한 행복이 지금 그녀가 그리고 있는 선명한 그림이 아닐까?

2부 히키코모리에서 시인은 그 모든 문제를 자신의 테두리 안으로만 한정하지 않았다.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소외된 노인의 (감자 다섯 알) 삶에 어처구니없는 벌금처럼 떨어진 생을 살피고 바라보고 이야기한다. 끝까지 죄를 인정하지 않는 엑스(술은 마셨지만, 음주 운전은 아니에요)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들을 직시한다.


'히키코모리'라는 시는 참 좋다. 곰이 빠져나오지 못하는 벽이 사실은 없는 벽이라는 거. 그에게도 고맙다는 말은 창 하나만큼의 격려라는 것을 시 속에 콕콕 박아서 안내한다.

이런 시선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천상의 마음으로 노래하는 시인의 이야기가 더 깊어진다.
밍밍하니 담백한 맛, 입을 데우고 가슴을 데우고 집을 데우면 떠오르는 파란 달, 누룽지 한 사발(누룽지 한 그릇) 같은 시인의 시가 지금 이 시대에 있다는 사실이 감히 기쁨이라고 말하고 싶다.


'공통점'이란 시를 읽을 땐 세상에 모든 소리가 사라지는 경험을 했다. 모든 소음이 음소거된 상태에서 시가 생생하게 그려졌다. 그만큼 묵직하고 따뜻하게 열린 시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인의 세계가 감지된 거다.

도대체 이 시인은 누구인가.

궁금해지는 것들은 힘이 세다(지구 무료 산책)고 했으니 내 궁금증이 사라지기 전에 시인의 시 속, 그 청량한 세계로 빠져든다.



시인은 이 시집이 약함을 동력 삼아 써 내려간 삶의 뜨거운 노래라고 했다.
약함을 입은 자가 자신을 시에 내려놓으면 이토록 강한 전사의 얼굴이 된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싸우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전사. 모든 약한 것들의 보이지 않는 눈물을 예리하고 부드럽게 받아내는 전사의 태도가 시인의 이야기에 실려있다.


평범한 일상어에 못내 해결 받지 못한 쓸쓸함과 그럼에도 지금의 단단한 행복을 지키고 싶은 결연함이 공존하는 시인의 세계에 멈추지 않는 박수와 응원을 보낸다.  시집과 둘째 시집이 다르지만 그녀의 시 안에는 살아있는 시어들이 옹골차도록 보송하다. 뜨거운 연주와도 같은 삶을 그녀만의 방식대로 노래하는 이 시가 오래도록 기억될 게 분명해 보인다.

그녀가 그녀답게 살아가도록 이 시들이 펄펄 일어나 응원하는 걸 본다.


나도 그 곁에 오래도록 서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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