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캐리소 Dec 21. 2023

할 만한 이별

열차 시간은 다가오는데 주차장의 차들은 줄어들지 않는구나.

열차 시간에 늦을까 봐, 제때 내 식사를 챙기지 못할까 봐 마음이 바쁜 네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어째 나는 매일 네가 새로울까.

이렇게 새롭게 닿는 눈이 좋은 걸까, 아닌 걸까?

너를 다 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매번 새롭게 너를 알아가는 게 내겐 가시 같은 아픔이기도 해.

그만큼 내 안에 갇힌 네가 자유롭지 못했을 것 같아서.


너로 인해 엄마라는 이름을 가졌을 때 모성은 옵션으로 장착하게 될 줄 알았는데 그 옵션이 내게는 없었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난 그럴 깜냥도 안 되는 사람이지만.

어쨌거나 나라는 인간과 너라는 세계는 다 알 수도 없고 알다가도 모를 모녀잖니.

이렇게 말하지 않아도 넌 알 거야. 살면서 제일 먼저 나와 일대격돌을 한 아이가 너니까. 그 사실마저도 미안하다.

아, 미안한 건 싫은데 말이지. 

그저 엄마로서 의무를 다해서 먹이고 입히고 키우는 일이 다였어.

이젠 너희들이 서서히 자리바꿈을 하는 게 보여.

아빠와 엄마를 걱정하고 염려하면서 우리가 전에 가졌던 마음을 서서히 너희들이 가져가는 것.

이것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괜히 혼자서 우왕좌왕한다.

지금은 새 옷과 신발이 적응이 안돼 엉거주춤하겠지만 언젠가는 조용히 내 자리를 알고 알맞게 들어앉겠지.


딸이 일하는 매장 바로 밑에 있는 작은 카페. 작고 아담하고 조용해서 참 좋았지.



열차 시간에 맞추느라 서둘러 식사를 하고 무거운 캐리어가 작은 엄마를 내동댕이칠까 봐 염려하면서 너는 내 손에서 기어이 짐을 빼앗아 든다. 짐을 미는 너의 뒤에서 종종종 쫓아가며 오랜만에 병아리가 된 것처럼 졸지에 닭이 된 네게 기댄다.


아잉, 좋아!


엉성하고 허당인 네가 나를 챙기는 모습에 배시시 속으로 웃음이 나지만 닭 노릇 하는 네 자존심을 위해 지그시 눌러 놓는다.

딸이라는 벼슬 때문일까.

매사에 조심하고(블라블라) 짐은 이렇게 이렇게 하고 몇 번째에서 내리라는 너의 말에 나는 나는 웃기지만 효리처럼 그냥 그냥 웃긴 건 아니다.


날은 갑자기 추워지고 덩달아 너도 조금은 우울한 것 같다. 잔뜩 흐린 날씨가 괜히 우리의 작별에 먼저 설레발이다.

너의 집에 있던 며칠 전 네가 네 남편에게 했던 말이 내 속에서 돌닻이 된다. 우리 엄마 곁에서 날 떼놓고 이 먼 곳에서 살게 하는 게 용서가 안된다는 말. 그런 네가 이 배경에 더 우울해질까 봐 난 눈치를 본다.

내 가슴속 서랍에 가장 여리고 붉은 살갗인 너희들의 마음.

그 마음이 원망이나 고통이라면 난 어째야 하나.

부디 그 마음이 옅어지기를.

닻을 내려 그곳에서 안온하기를.




기어이 열차 안에 캐리어를 넣어주고 날 안는다.

원래는 데면데면했는데(나만 그랬나) 이별은 사람에게 안하던 짓을 하게 하나보다.

고마워, 내 딸.

딸이라는 말이 이렇게 포도송이처럼 풍성하고 청량하게 들릴 줄이야.

난 또 딸바보 엄마가 되어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잘 견디어가며 너희들을 위해 기도의 촛불을 켤 거야.

나를 잘 돌보아 너희들의 안심을 짓고 너희들의 울타리를 따뜻하게 유지하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


딸 가족과 함께 갔던 영도바다. 흰여울 문화 마을에서 까부는 녀석들.



거기 부산에는 눈이 오지 않는다고 주혁이가 말하더라. 할머니랑 같이 눈 보고 싶으니 지금 내리고 있는 눈 사진 하나 보내달라고. 아직은 아기티가 벗어질랑말랑한 초딩 2학년의 그리움이 내겐 너의 그리움과 겹쳐져.

읽던 책 한 페이지를 넘기듯 철 모르는 병아리처럼 새로운 해와 또 만날 새로운 날들을 기다린다.

그때까지 행복해. 딸.








매거진의 이전글 금쪽이 아빠가 달라졌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