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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쓴 시를 잃어버렸습니다

by 캐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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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쓴 시를 잃어버렸습니다


아이를 잃은 엄마인 양

시가 울고 있는 경로를 따라가 보고

싶지만


물방울무늬로 남은 기억은

아무 곳에도 데려다 주지

못했습니다


어제에 남겨놓은 상념으로

적은 시들을

샅샅이 뒤졌는데

어느새 휘발되어 버리고


정신의 낙관(落款)만

이곳저곳으로 떠돕니다


얼굴 없는 시의

호소와 읍소가

짐승의 포효처럼 뒤끝으로

남습니다


관통하는 어떤 것이

모자랍니다






아무리 뒤져도 나오지 않는 것은 잃어버린 게 분명합니다.

혹시나 책상 위에 놓인 책들 사이에, 혹은 내가 보지 못하는 어느 구석에서라도 불현듯

튀어나와 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저버리고 찾지 못합니다.

아무 곳에도 없는 것을(사실은 내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일지도요) 찾는 일은 기운 빠지는 일입니다.


널브러진 기운 줍줍해서 다시 모니터 앞에 앉습니다.

내 힘으로 안 되는 것이 있다면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합니다.

다시 한 자 한 자 넋두리를 줄 세워 다시 한 편의 시를 낳습니다.


못나도 이상해도 내가 만든 것이니 그냥 사랑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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