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어른들

by 캐리소

내가 살면서 지금까지 만난 어른들은 교회에서 만난 어른들과 사회에서 만난 어른들로 나뉜다.

작고 가족적인 교회에서 30년을 신앙생활을 했으니 그곳에서 만난 어르신들만 해도 10여 명이다.


또 어르신을 돌보는 일을 5년 동안 했으니 그곳에서 만난 분들도 20여 명은 된다. 교회에서 하늘나라로 보내드린 어른들은 3분, 돌봄 어르신은 두 분과 이별했다. 그래도 나는 운이 좋아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다.


4년 동안 한 어르신과는 아버지와 딸처럼 지내며 돌봐드렸고, 두 어르신은 마지막까지 함께 해서 추억이 많다.

엄마 같은 분들도 많아서 사실 내가 돌봐드린 게 아니라 같이 지내고 함께 시간을 나누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4년 동안 함께 지낸 어르신은 구강암으로 말씀을 못하는 분이었다. 온종일 침대 안에서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는 와상환자다.

그분과 함께 지낸 네 번의 사계절이 어제처럼 선명하다.

종종 내가 그린 그림도 보여드리고 책도 읽어드렸다. 함께 필담을 나누면서 꿈이야기도 했다.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하더라도 우린 서로를 배려하며 지냈다. 어르신은 내가 힘들까 봐 나를 챙겼고, 난 어르신이 민망할까 봐 기저귀와 침구를 잘 챙겼다.


어르신이 잠을 오래 주무시면 걱정이 되었고 평소에 잘 드시던 식사가 부실해지면 잔소리도 했다. 그러면 착한 아버지처럼 내 말을 잘 들어주셨다.

어르신과 함께 한 4년의 시간은 내 아버지의 마지막을 함께 한 일 년처럼 소중하고 오래 남는다.


글을 쓰겠다고, 이제 그만 오겠다고 말씀드리니 눈물이 맺힌 큰 눈으로 나를 보셨다. 그래서 제일 믿을만한 선생님을 연결해 드리고 오래오래 포옹하며 인사를 나눴다.


잘 계셔야 한다고, 너도 가서 행복하라고.


봄이 되면 그 집 앞에 항상 피었던 목련이 생각난다. 어르신의 깊은 눈과 정갈한 입매를 닮은 목련이 지금쯤 몽실하니 피었을 것이다.




교회 어른 중에서 유독 내게 잘해준 어른은 진희 권사님이다.

권사님이 계실 때 우리 집은 교회에서 백 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주택이었다. 권사님은 함께 기도회도 하고 예배도 드리고 야외로 놀러 갈 때도 언제나 나를 챙겼다. 예배 시작 전에 우리 집에 들르실 때가 있는데 그러면 내 셔츠도 다려주셨다.

(나중에 보니 셔츠가 눌었...) 하지만 엄마처럼 다정한 그분의 사랑이 고마워서 눌은 셔츠는 오래 입고 다녔다.


내가 멀리로 이사 가서 진희 권사님과 헤어지고, 다시 이사오니 권사님이 이사 가셔서 만나지는 못하지만, 권사님의 사랑은 지금도 교회 근처 동네에 가면 공기 중에 떠다닌다.

그곳을 지나는 버스 안에서도 짙은 여운을 데려다주는 그리움으로.




그분들도 나와 같이 꿈이 많았다.

어떤 색으로 살고 싶은지 말할 땐 소년 같았고 소녀 같았다.

예전 이야기로 눈동자에 아련한 빛을 내다가 현실로 돌아오면 누군가를 품어주고 사랑해 주었다.


어른들은 꽃 같다.

특히 좋은 어른은 봄에 피는 꽃 같다.

그들은 젊은 내게 향기로 기억된다.

그런 어른이 되고 싶은 소원도 심어준다.

꽃이 봄의 소망이듯이 그 소망을 따라 걸을 힘을 주었다.


봄이다.

진짜 어른들이 귀한 요즘, 그 어른들의 얼굴과 주름진 손과 웃는 입과 웃을 때 아예 감은 두 눈이 그려진다.

봄은 그런 어른을 떠올리기 참 좋은 계절이다.

봄에 떠난 우리 엄마랑 같이 자꾸자꾸 생각나는 얼굴이다.




* 대문사진: 내가 찍은 어르신의 손~♡



[캐리소 연재]

월 5:00a.m. (열 길 물속같은 나를 탐험함)
화 5:00a.m. (지혜의 숲에 닿다)
수 5:00a.m. (나이듦에 대하여)
목 5:00a.m. (징검다리 시, 쉼표)
금 5:00a.m. (자녀에게 주고 싶은 엄마의 모든 것)
토 5:00a.m. (촌놈 - 집. 이야기를 품다)
일 5:00a.m. (캐리소의 그림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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