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가는 길

by 캐리소


표면적으로는 어버이날을 위해서 모인 식사 자리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어버이가 아닌 자식들 마음의 현주소를 확인하는 자리가 됐다.


이런 대화가 과연 맞는 걸까?


맞든 아니든 서로 의견을 나누고 어느 방향으로든 결론이 나야 할 상황이다.

멀리서 사는 손자녀 몇몇이 빠지고 어렵게 시간을 맞춰 열한 명이 모인 시댁 가족.

그들과의 점심 식사를 막 마무리한 참이었다.


할 얘기가 있으니 네 남매끼리만 커피 한잔하자는 시동생의 제안에 자리를 옮겨 모여 앉았다. 짐작한 대로 점점 대소변이 어려워진 시어머니의 거취 문제다.

중기를 지나 후기로 넘어가는 치매와 재발된 암 때문인지 시어머니의 화장실 문제가 더 심각해졌다. 그래서 이젠 자신이 어머니를 감당할 수 없노라고. 낮에 요양사가 방문하고 일주일에 두 번씩 두 시누이가 들여다보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매일 진동하는 변 냄새도 고역이라고 했다.


매주 남편과 함께 시동생 집으로 방문해서 겪은 일이라 나도 충분히 공감한다.

다들 직장에 매여 있고 두 누이 형편도 어려우니 요양원에 모시는 것이 좋겠다며 시동생이 형제들의 의견을 묻는다.

큰아들인 남편도 그 의견에 동의했다.

그러나 두 시누이의 생각은 달랐다. 어머니를 그런 곳에 모시고 싶지 않고-사실 무섭기도 하고 자식 된 양심으로는 못하겠다고- 아직 인지가 있는 어머니의 성격상 얼마 못 버틸 거라고 걱정했다.


그러면 어떻게, 누가 이 고민을 짊어질 것인가!


누구 하나 명쾌한 답변을 내놓지 못한 채 속 시끄러운 십여분이 흐른다.

오랜 정적과 한숨 끝에 큰 시누이가 자신이 모셔가겠다고 한다.

곧이어 큰 고모부의 반론.

화장실도 하나뿐인 자신의 집안 사정을 이야기하며 반대한다. 큰아들인 남편도 서로 얘기된 거 아니면 혼자 결정할 일은 아니라고 맞받았다.

다시 암전.


딱히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모두 침통한 표정이다.

아무것도 모른 채 비가 오는 창밖을 바라보며 손녀들과 얘기하고 있는 시어머니의 뒷모습.

그게 우리의 다음 모습으로 오버랩된다.

창밖에 내리는 비와 초록의 나무들의 조화가 왠지 처연하고 흐린 정물화 같았다.




긴장감과 당혹감이 우리 탁자 위로 내리 꽂힌다. 이야기 중 화장실 가듯 자리를 빠져나간 막내 시누이 부부.

얼마 후에 돌아와 자리에 앉는다.

붉게 충혈된 눈을 한 막내가 말한다. 자기 식구들과 따로 의논했다며.

엄마를 자기 집으로 모시겠다고!


신혼 때도 어머니와 5년을 살았으니 지금도 자기들이 제일 무리가 없을 거라며 지금 자기 몸이 그다지 좋지 않으니 두 딸이 종종 도와 외할머니 돌봄에 손을 보태겠다는 말도 덧붙인다.

전기가 통한 듯 마음이 찌르르하다.

억지로 그럴 것 없다면서도 시동생은 한결 홀가분한 표정이 된다.

그러고 나서는 일사천리다.

형제들 각자 형편에 맞게 매달 어머님께 소용되는 비용을 막내 시누네로 보내기로 한다.


어찌 됐든,

다행이라는 안도감과 동시에 며느리인 내 입장으로는 편하지만은 않다.


4년 전 이맘때 똑같은 상황을 경험했다. 친정엄마가 점점 쇠약해지고 매주 2시간씩 걸리는 친정행에 지쳐 있던 내가 남편에게 넌지시 우리 집으로 엄마를 모셔올까, 물었다. 남편은 큰처남 눈치도 보이고 우리 집엔 엘리베이터가 없으니 어렵겠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이해를 못 할 정도의 발언은 아니었지만, 그때는 서운하고 속상했다.

평생 하나밖에 없는 사위라고 아들처럼 아껴줬는데 사위는 역시 남이구나 싶었다.


그래, 이렇게 다 자기 일로 닥쳐야 그 당시 무너지던 내 심정을 알겠지. 엄마를 잠깐이라도 모시자는 내 말에 반대하던 남편의 표정이 떠오른다.

동시에 가엾다는 생각에 마음을 짓누르던 시어머니의 처지가 가슴속에서 서서히 지워지는 것 같았다.

이렇게 주고받는 현실이 냉정하지만 현실의 얼굴은 원래 싸늘하다.


형제들 모두 자신의 상황 때문에 고민하고 주저하는 사이에 해결책을 갖고 들어온 막내 시누이에게 어떤 표정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저 막내 고모부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한 마음뿐이다. 그랬다가도 왜 내가 미안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오락가락한다.




위의 글을 쓰고 나서 거진 일 년이 지났다.


시어머니는 시누이 집에서 잘 지내고 계신다.

지금도 진행되는 병을 바라보며 마음이 무너질 시누이가 가장 염려된다.

그래도 어머니는 매일 주간보호센터(어르신 유치원)에 다니고 어린이처럼 먹는 법, 화장실 가는 법을 새로 배운다. 어머니는 행복해 보이지만 가족들에겐 고스란히 아픔이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모든 가족들이 시누이를 지지해 주고 힘들고 버거워도 가족의 도리를 잊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게 이 어려움이 우리에게 준 배움이다.


병들고 늙는 일은 모두에게 해당되는 일이다.

그런데도 애써 나 몰라라 한다.

지금은 아니라고 밀쳐놓는다.

밀쳐 놓았던 거 끌어다가 서서히 준비해야 하는데도.


돈 이야기만이 아니다.

몸, 마음,

거취 문제도 들춰보고 예비해야 한다.

대응하지 말고 대비하라고 했는데*

우린 대응조차 못하고 항복하는 꼴을 보인다.

나이듦에서 늙음으로, 소멸로.


우리의 가는 길이 뻔한데.

지금이 영원할 것처럼 내일을 잊어버리고 살아간다.

안타깝지만(이라고 쓰고 보니 안타까운 건 아니다) 우린 늙는다.(우리도 자연이니까)





* 엄마의 유산. 김주원. P. 289



2024년 5월에 쓴 글을 재구성해서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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