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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리소 Mar 12. 2023

가장 쉬운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이다.



차 안 공기에 얼음이 끼었다. 남편은 곁눈으로 조수석 아들을 흘끔거리고 아들은 아무도 끼어들지 말라는 듯 핸드폰에 코를 박는다. 뒷좌석에 앉은 나는 아들의 뒤통수에서 씩씩거리며 화를 참고 있는 한 마리 코뿔소의 위용을 느낀다. 마음이 좌불안석이다.

모처럼 세 가족이 움직인 날이었다. 아들이 귀가 아프다고 해서 이비인후과에 방문했는데 때마침 토요일 오전이라 환자가 넘쳐났다. 남편은 지하 주차장에서 마땅한 자리를 찾지 못하고 그냥 주차장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아들과 둘만 5층 이비인후과 병원으로 올라갔다. 서른 번째 대기 번호가 매겨진 아들과 나란히 앉아 기다리는데 진료받기까지 30분이 넘게 시간이 걸렸다. 그것도 긴 대기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가버린 환자들의 빈자리가 당겨져서 받은 진료다. 아침을 거른 아들과 점심 메뉴를 고르다가 아들이 먹겠다는 돼지갈비로 정해졌다. 주차장으로 내려가 남편과 셋이 합류해서 돼지갈빗집으로 출발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지도상에 표시된 자리를 몇 바퀴를 돌아도 식당은 나오지 않고 운전대를 잡은 남편은 맘이 조급해진다. 씩씩거리는 아들의 콧바람도 거세진다. 아들은 배가 고프거나 차에서 오래 지체되어 멀미하면 짜증과 신경질을 내는 강도가 유독 심해진다. 급기야 상대방이 왈칵 화를 낼 때까지 이어지기도 해서 이런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고 신경을 썼다. 그런데 오늘은 그런 아들의 공복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남편도 툴툴대며 운전 속도가 빨라진다.

"가게가 없어졌나 보네. 요새 그런 집들이 많아."
눈치껏 남편을 거들며 내가 말했다.
"그냥 집으로 가!"
아들이 잔뜩 부어서 내뱉는다.
"그냥 집 근처로 가서 먹고 들어가, 집에 먹을 거 없으면 또 성질낼 거잖아!"
한쪽은 남편을 한쪽은 아들을 번갈아 쳐다보며 마지막 선언하듯 내가 말한다.

어찌어찌 집 근처 고깃집에 도착한 우리 세 식구는 셋 다 말없이 자리에 앉는다. 입을 굳게 다문 아들은 셀프 코너로 가서 자기 몫의 소스와 수저를 챙기고 밥을 고봉으로 퍼 온다. 평소에 많이 먹지 않는 아들이지만 꽤 배가 고팠나 보다. 네 것만 챙겨 오면 어쩌냐며 한 소리 하려다 그만두고 난 남편과 내 수저, 소스 접시 그리고 야채들을 챙겨 온다.
고기가 구워지기 무섭게 남편과 나는 아들 그릇에 고기를 수북하게 쌓는다. 그러고 나서 남편 앞으로 익은 고기를 놓아준다. 고개를 그릇에 처박고 정신없이 먹던 아들이 어느 정도 배가 찼는지 자신의 그릇에 고기를 담는 나를 저지한다.
"인제 그만 먹을래. 냉면 먹을 거니까."
더 먹으라고 하려다가 나도 그만둔다.
휴,
눈이 마주친 남편과 내가 천천히 식사를 이어간다.

초딩 시절부터 힘들어했던 아들의 주의력 문제나 우울증 때문에 나나 남편이나 아들에게 적절한 관심과 사랑을 주려고 애를 썼다. 우울 정도가 심해서 자해의 가능성도 있다는 상담 선생님의 말씀이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 되었다. 우리뿐만 아니라 두 누나에게도 야단치지 말고 동생을 돕도록 부탁했다. 아들이 자신의 효능감을 조금이라도 찾을 수 있게 가족들의 관심이나 잔소리가 지나치지 않도록 조절하고 학교생활이 즐거울 수 있게 공부 이야기는 아예 꺼내지도 않았다. 아들을 맘껏 사랑하고 싶은 대로 사랑하는 일은 쉽지만, 상대가 편안하게 느끼도록 사랑의 강도를 조절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었다. 세상의 어떤 기준보다도 내 아이의 현재가 가장 중요했다. 부모로서 내가 겪은 어려움을 아이가 겪지 않게 하고 싶은 마음은 쉽지만, 아이가 어려움을 겪어내고 자기의 경험으로 습득하도록 눈 감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아이에게 무언가 도움을 주고 싶어서 권유하는 일을 아이가 매몰차게 거절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내 속으로는 '너를 생각하는 내 마음이 참으로 아깝다.' 라며 마음을 접는다. 아이는 절대 알 수 없을 순전한 내 마음이 그때는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다. 마치 죽을힘을 다해 달리던 내가 제일 먼저 바통을 받아 다음 주자인 너에게 주었는데 그 바통을 맥없이 던져버리는 것처럼 애석하고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바통을 받지 않겠다는 아이의 의사를 존중했다. 그 이유를 충분히 이야기하도록 했고 그래서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 말은 나를, 내 마음을 내려놓는 일이 제일 어렵다는 방증이다. 내 마음을 내려놓고 너의 마음을 받아 드는 것. 남에게는 그렇게 하라고 쉽게 조언하면서 내 경우가 되면 코를 빠뜨리고 포기해야 하는 것.
상식적으로는 쉬운 일이 개인적인 일이 되면 가장 어려운 일이 되어버린다.

밥을 다 먹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내 돈 내고 밥 사주는데 왜 이렇게 자기가 눈치를 봐야 하냐며 아들에게 헤드록을 건다. 그새 기분이 나아진 아들은 낄낄거리며 아빠, 잘 먹었어, 하며 넉살을 떤다. 이 가정엔 늘 평화와 전쟁이 퐁당퐁당으로 온다.  

아들은 동네 형들과 축구하러 가고, 남편은 스크린 골프장으로 연습하러 가고, 난 침대로 가서 털썩 몸을 던지고 읽다 만 책을 집어 든다.
그래, 이렇게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자.

자기가 원하고 좋아하는 일에 빠지면 쉽든 어렵든 가게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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