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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리소 Mar 19. 2023

봄이 되어 있을까

너와 지냈던 시간 속에서



그때 난 너무 어렸다.



그 애를 설명할 때면 자꾸 변명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침이 꼴깍 넘어간다. 고딩엄빠 프로그램에 출연한 소녀들처럼은 아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비주얼도 내면도 그들만큼 어리고 미숙했다.



그 애를 처음 만났을 때 내 세계가 전부였다.

미처 여물지 못한 자의식이 내 안에 가득해서 새로운 우주 하나가 내게 왔다는 걸 알지 못했다. 처음 만났을 땐 그저 어리바리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나와 그 애가 무엇으로 연결된 것인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나의 첫 딸인 그 애가 나와 전혀 달라서 당황스러웠다. 그 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안으로 파고드는 나와는 반대로 그 애는 밖으로 뻗치는 기운을 소진하며 저인망 그물처럼 친구를 만들고 관계를 이루었다. 온기와 물기가 없는 엄마에게서 그 애는 자신에 대한 확신도, 새로운 일에 적극 뛰어들 용기도 얻지 못했다.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매번 발견하면서 우린 좁혀지지 않는 간극을 방치하며 지냈다.

그 애가 사춘기를 겪으면서는 더더욱 나와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다른 방향을 바라본다는 걸 알았다. 더 방치했다가는 그 애를 잃어버리고 다시는 찾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오전에 딸과 통화를 했다. 

얼마 전 부산으로 이사 간 딸은 며칠째 우울감과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평소에 사람 만나기 좋아하고 성격도 활달하고 물건 사는 것도 좋아하던 딸은 무기력에 갇혀서 쇼핑도 외출도 하지 않고 내내 잠만 잔다고 한다. 오히려 손자들은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고 사위도 네 식구가 함께 살 수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며 하루하루가 즐겁고 일을 마치고는 신이 나서 퇴근한다는데 오직 딸만 끙끙 외로움을 앓고 있다.
그 말을 들은 나도 홍수로 불어난 강에서 마구 흔들리파편처럼 속이 시끄러웠다.


이사 가기 몇 주전부터 난 내심 딸을 제일 걱정했다. 딸은 친정 식구들도 가까이 있고 친구들도 손쉽게 만날 수 있고 주변에 친하게 지내는 엄마들이 많은 이곳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부산에 직장이 있는 자기 남편과 주말부부로 4년이나 떨어져 지내면서 아이들도 아빠를 많이 그리워했다. 헤어질 때마다 세 부자가 눈물바람을 해서 딸이 고심 끝에 이사하기로 결단을 내린 것이다.


 모든 익숙한 배경을 두고 먼 타지로 가서 새로 시작해야 하는 의 두려움이 짐작이 되어서 걱정이 앞섰다. 이사하기 몇 달 전부터 딸은 가기 싫다며 가서 자기가 잘할 수 있을까 걱정스럽다고 내내 한숨이었다. 밤마다 우울감에 잠이 오지 않는다고도 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그 애는 부모를 떠나 살 수밖에 없는 성인이고 이제는 달라진 모든 것을 마음으로 몸으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나의 그런 걱정을 깊숙이 묻어두고 잘할 거라고, 처음이 힘든 거라고 딸을 다독거리며 용기를 주어야 했다.
통화가 끝나고 나니 더 진하게 딸의 쓸쓸한 마음이 안쓰럽고 아팠다. 축축하게 가라앉은 그 애의 심정이 내게로 건너와서 깊은 마음바닥을 무겁게 다. 무언가 도움이 되고 싶지만 이 마음을 누르고 견뎌야 하는 것도 내 몫이다. 그래야 딸도 오롯이 혼자 어려움을 헤쳐나갈 스스로의 방법도 생길 것이다. 평생 도울 수 없다면 홀로 버티고 이겨내도록 지켜보아야 한다. 하루종일 어디다 잃어버린 것처럼 허둥대는 마음이 슬픔과 걱정의 날개를 단 양 온몸을 휘감았다. 날씨만큼 우중충한 오늘 하루치의 삶을 숄더백처럼 두르고 시간을 보냈다.



버스를 타고 퇴근하는 길이 십자가를 진 구레네 시몬처럼 무겁기만 하다. 이 무거움을 어디 부려놓을 곳이 필요하지만 내가 가진 다른 방법은 없다. 기도밖에는.

방문을 닫고 조용히 무릎으로 앉는다. 깊게 가라앉은 마음을 바라본다. 힘들어하는 아이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무력감이 바닥에 펼쳐진다. 두 손을 내려놓는다. 눈물이 흐른다. 무겁고 찐득한 것, 두려움과 염려가 딸과 내 사이에 강처럼 놓여 있다. 강을 건너는 발걸음을 물살이 잡는다. 먹구름이 되어 흐르는 그것이 물에 젖은 습자지처럼 다 녹아 없어지길. 그래서 아이에게 가벼움만 흘러가기를. 불안의 폭포가 딸을 칭칭 감을지라도 다시 뜯어내고 일어서기를. 깃든 슬픔을 걷어내려는 듯 기도가 자꾸 흔들린다. 꽃잎처럼 후드득 눈물이 손등으로 내리 꽂힌다. 쏟는다. 속에 있는 쓰디쓴 것들을.
툭툭 떨어지던 눈물이 하프의 선율처럼 결이 생긴다. 그 눈물 끝에서 후려치던 폭풍이 점점 꺾인다. 서서히 잦아드는 바람.

눈을 뜨니 사위가 깃털처럼 고요하다.








지나온 우리의 길을 돌아본다.


상담하러 다니고 약물치료와 심리치료를 병행하느라 많은 시간을 허둥거렸다. 서로를 똑바로 보지 못하고  허공으로 눈을 굴리던 모녀는 살금살금 눈을 맞추는 간지러운 엄마와 딸이 되었다.

옛날에 엄마는 내게 이렇게 하고 저렇게도 했잖아.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 줄 알아?

나를 지청구하는 스스럼없는 .

그런 네게 옛날에 건네지 못했던 미안함과, 오래 묵은 사과를 버무려서 이제야 슬그머니 내밀었던 나. 그런 내게

'엄마도 어렸잖아. 엄마도 처음이니까  몰라서 그런 거지.' 

나보다 더 너른 대답을 내게 돌려준. 그 말이 내겐 부끄러움이고 또 아픔이다. 미안해. 딸. 엄마가 항상 너보다 늦어버려서. 

좀 더 일찍 너의 마음을 바라봤어야 하는 건데.

어떤 땐 네가 신기하고 귀여워서 네가 삼십대라는 것도, 네가 아이들의 엄마라는 것도 잊어버리곤 해.




엄마가 부산으로 이사 오면 안 돼?




가끔은 이렇게 어리광하는 널 받아주고 싶어 진다.

나도 이 나이가 되도록 엄마가 안계셔서 어리광을 부리지 못한다는 사실이 못내 아쉽다. 딸도 충분히 알

고 있다. 늦게 본 막내 동생과 아빠도 엄마가 함께 있어줘야 할 가족이라는 걸. 그런 것들을 뛰어넘는 마음을 서로 나누고 싶어 한다는 걸.


딸이 그곳에서 자리 잡고 마음을 정착할 때까지는 자주 만나기로 했다. 이번에는 말일쯤 우리가 부산으로 가기로 했다.

봄망울이 마구 움트는 그곳의 사진을 자꾸자꾸 보내며 딸은 우리와 함께 할 시간기다리고 있다. 


계절이 지나가면서 무엇이든 제자리에 있는 법이 없다. 땅에 움트는 새싹도 땅 안에서 이미 봄을 그리고 때를 기다리며 자신이 등장할 시기를 엿보고 있었을 것이다. 나무도 아이들도 자라고 달라진다. 부쩍 똘똘해진 손자들의 모습도 기다려진다. 딸이 보내준 사진엔 손자들의 미소가 팡팡 터진다. 새로 움트는 봄만큼 예쁘다. 그런데도 나는 손자보다 봄보다 딸의 기쁜 미소가 더 기다려진다.

그때쯤이면 딸도 자기 가족을 넉넉히 품고 스스로도 충만한 봄이 되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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