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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리소 Mar 26. 2023

쇼핑은 힘들어

저절로 미니멀 라이프로



필요한 물건이 하나둘 떨어져 갔다.
메모장에 적어놓은 필요 물품 메모가 쌓여간다.
나중에 사지 뭐, 하며 미루다가 꼭 필요할 때조차도 그냥 건너뛰게 된다. 그러다가 반드시 쇼핑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해야 하는, 이라고 쓰고 보니 필요의 코뚜레와 밧줄에 묶여 억지로 끌려가는 소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건 필요한 시기가 지났고, 이건 별로 필요 없을 것 같고. 메모장을 싹 갈아엎어 추리고 추린 품목은 스킨, 클렌징 워터, 선크림 정도다. 식료품으로는 샐러드 야채, 닭가슴살 소시지다. 백화점 화장품 코너에 들러 세 가지를 고르고 바로 나와 식료품 매장으로 들어간다. 여러 가지 상품 중에서 대체 무엇을 골라야 할지 몰라 대충 투명 상자에 갖가지 야채가 들어있는 것과 소시지 하나를 골라 계산대에 올린다.
휴대폰에 적어놓은 네다섯 가지 물품을 빠르게 훑어보고 카트에 넣어 계산하는 데까지 삼십 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쇼핑은 내가 귀찮아하는 일 중 하나다.
무언가 필요한 것을 구입하는 일이 기분전환이 된다거나 즐거운 일이라는 친구의 말에 나하고는 다르군 하고 생각했다.
쇼핑은 전기세 고지서와 같은 숙제다. 살아야 하니 해야 하는 것.
마트나 백화점에 가서 많은 물건 가운데 둘러싸여 있다 보면 산더미 같은 물건의 위용에 짓눌리고 급기야 진하게 피로감이 더해진다. 그러니 더더욱 쇼핑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 버리고 방전되어 뻗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물건을 사는 일이 내게는 귀찮고 불합리한 일이다. 굳이 일부러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그렇게 되고 있다. 이럴 땐 그냥 나를 놓아두는 게 좋다.




남편은 쇼핑을 좋아한다. 남편과 함께 장을 보러 가면 그는 천천히 식재료의 냄새를 맡아보고 이것저것 구경하기도 하며 아이쇼핑을 즐기느라 세월아 네월아 시간을 보낸다. 얼른 하고 집에 가자고 잔소리하다가 그것도 지친 나는 결국 쇼핑센터에 마련되어 있는 벤치에 털썩 앉아버린다. 거기 그렇게 쇼핑에 K.O패 되어버린 패잔병처럼 앉아 핸드폰이나 뒤적거린다. 그러면 남편은 때는 이때다 하며 카트를 신나게 밀어 세 바퀴나 돌아 카트 안을 가득 채워 지쳐버린 내 앞에 도착한다. 처음에는 카트의 내용물을 골라가며 다시 가져다 놓기도 했으나 그것도 늙으니 귀찮아져서 그냥 둬버린다.




옷 쇼핑마저도 딸들에게 일 년에 두세 번 있는 기념일이나 내 생일에 선물로 사달라고 해서 입고 있다.
그게 을마나 편한지 모르겠다.
예전에 그토록 총기 넘치게 사 모았던 가방도 이젠 심드렁해져서 그만둔 지 오래다. 지금의 내가 그리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여태까지 살면서 얻은 진리는 세상에 아무것도 영원한 건 없고 물건도 세월이 지나면 잿더미 같은 먼지만 풍긴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귀중하고 값비싼 물건이라도 그 물건에 서사가 있거나 추억이 있기 때문에 귀한 것이 되는 것이지, 물건은 물건일 뿐이다. 그렇다고 내가 물욕이 하나도 없는 신선이나 선비 같은 사람이라는 말은 아니다.




식사를 위해 식료품을 사는 건 당연하지만 그 밖의 물건에 대해서는 서서히 애정이 사라지는 중인데 한동안 이런 상태로 살아가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그러다가 번뜩 벼락 맞은 것처럼 뭔가를 사고 싶어 미칠 수도 있는 노릇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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