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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리소 Mar 31. 2023

나와 그 애의 9시


- 수다
책을 펴놓고 엎드려 있는데 방문이 열린다. 아들은 엄마 방은 왜 이리 춥냐며 이불속으로 파고든다. 9시 게임 시간이 끝나면 열 번 중 아홉 번은 내 방문을 빼꼼히 연다. 같이 엎드린 아들에게 오늘 하루에 대해서 묻는다. 저녁을 배불리 먹고 기분이 좋았는지 이 얘기 저 얘기 늘어놓는다. 급식은 어땠는지, 학교에서 무얼 배웠는지, 무슨 과목이 재미있는지. 그러다가 아, 졸려하더니 이내 눈이 감긴다. 잠시 후엔 여느 때처럼 내 방 침대에서 잠든다. 어차피 내 방에서 잠든다고 해도 내가 잘 시간엔 일어나자, 아들. 하고 손을 잡아 일으키면 바로 일어나서 반쯤 자는 상태로 자기 방으로 간다.

잠든 아들을 그냥 두고 읽던 책을 읽거나 휴대폰을 토독 톡톡 두드린다.
내가 아들 곁에서 휴대폰으로 무언가 쓰고 있는 터치 소리가 자장가로 들렸는지도 모른다.
이내 코 고는 소리.
위는 내 핑크색 후드를 입고 아래는 여름용 반바지 파자마 차림이다.

- 음악
청소하고 저녁 식사 후 이를 닦고 왔더니 벌써 엄마 침대를 점령했구나.
아들, 오늘의 9시 메뉴는 뭐니? 속으로 묻는다.
BGM을 17곡 틀어줄 테니 뭐가 좋은지 말해달란다.
헉!
시끄러운 음악은 싫다고 하는데도 좀 골라보란다.
메모지에 1번부터 17번까지 표시해 가며 들었더니 귀가 웅웅 울리는 것 같다. 기계로 된 음악은 다 똑같이 들린다고 했다.
왜 BGM을 듣는 게 좋으냐 물었더니 20세가 되면 클럽을 가보고 싶어서 듣는단다. 아, 웃겨!
찰리 푸스 노래를 5곡 들려줄 테니 뭐가 젤인지 고르란다. 그의 노래는 다 좋지.
메뉴를 바꾸어 내 귀에는 모깃소리처럼 앵앵거리는 일본 노래를 들려주고는 하이라이트 부분을 우스꽝스럽게 따라 한다. 게임 음악도 나름의 기승전결이 있어서 너무 좋다나 뭐라나. 중국 노래까지 듣는 아들에게 참 여러 가지 하네. 하고 말해준다. 일본 노래를 번역해 부른 버츄 유튜버의 노래까지, 음악 지옥을 맛보게 해주는 아들이다.

- 과거가 궁금해
핸드폰을 쥐고 방으로 들어온 아들이 국뽕(무조건적으로 우리나라를 찬양하게 되는) 프로를 본다며 엄마의 자문이 필요하단다.
2002년 월드컵 시절의 축구 영상을 보여준다. 자기는 이 영상에서 한꺼번에 터지는 대~한민국 소리와 똑같이 울리는 함성에 전율이 일면서 가슴이 찌르르하다고, 이때에 태어나지 못한 게 가장 아쉽다고 한다. 그러면서 미주알고주알 그때 큰누나는, 작은 누나는 어디에 있었는지, 아빠와 엄마는 무얼 했는지 꼬치꼬치 묻는다. 그런 영상을 여섯 개나 본다. 그러면서 이곳은 어디냐, 이 사람은 누구냐, 묻는다.
가끔 아들은 자기가 태어나기 전의 영상이나 사회현상에 대해 물을 때가 있다. 갑작스러운 질문을 받고 당황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럴 땐 그저 내가 생각하고 느낀 대로 말해준다. 모르면 모른다고도 하고.
아들은 호기심이 많다. 그걸 두 누나들처럼 다른 데서 채우지 않고 비록 다 알지 못하지만 엄마에게 물어줘서 고맙다.

- 탕후루
나와 아들의 9시가 당분간은 계속될 것 같다.
난 탕후루라는 음식은 먹어본 적이 없지만 이 시간을 생각할 때 그 음식이 떠오른다. 지나치게 선명하고 쨍한 색감의 탕후루의 빛깔.
반짝반짝 빛나기까지 해서 없던 식욕마저 일으킬 만큼 예쁘고 깜찍하기도 하다. 상상하기로는 달고 시원하고 입안을 향긋하게 해 줄 것만 같다.
아들과의 시간이 찰나적이고 영원하지 않다는 전제가 더 애틋하고 귀하다. 오래도록 반짝이며 가슴에 남을것 같다. 그는 이제 조금 있으면 성인이 될 것이고 자신의 앞길에 대한 생각만으로 가득 차서 엄마와의 9시를 잊어버리겠지만 내겐 탕후루의 강렬한 색처럼 마음에 선명하다.
탕후루는 메인 요리는 아니고 디저트지만 아마 맛을 본다면 자꾸 생각나지 않을까 짐작된다.
여행지에서 여러 사람이 손에 들고 다니며 즐기던 탕후루를 너무 달 거라고, 그래서 금방 질릴 거라고 단정해 버렸던 것처럼 때론 혼자 있고 싶어서 아들의 9시를 귀찮아했었는데 그러지 말아야지 생각한다. 꼬치에 끼운 재료에 따라 다양한 맛이 날 탕후루같이 아들과의 9시도 다양하게 맛보게 되겠지?
하하 즐겁다.
어디 탕후루 한번 먹어볼까?





*대문사진은 '축복받은 유전자'님의 엄마표 먹거리 블로그에서 가져다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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