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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리소 Apr 04. 2023

그날 하루의 신기루

어린이날 이야기를 쓰려고 했는데

부모님은 모두 바빴어요.
제 기억엔 그래요.
제가 너무 어렸을까요?
아버지는 무얼 하시는지 저는 알지 못했지요.
아버지는 무언가로 늘 바쁘시고 그래선지 딸인 저와 아들인 남동생과 눈을 맞추셨던 기억은 없네요.
제 기억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고요.
엄마는 몸이 약한 분이었어요. 약한 몸으로 우리를 돌보는 일만으로도 버거워하셨어요.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이 빠듯한 형편이었지요.



우린 이사를 자주 다녔어요. 제 초등학교 전학란에 적힌 주소가 여섯 번이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지요. 그래서 전 친구도 없었답니다. 어린이날이요? 제가 친구가 없어서 늘 고적했던 것처럼 그런 날이 제겐 없었어요. 원래 갖고 있던 걸 빼앗긴 게 아니니 아쉬움이 있을 리가 있나요? 그저 어린이날은 내 일이 아니지요.



제가 여섯 살 때 막냇동생이 태어났어요.
그 후에 우리 집에 어린이날이 생겼을까요?


맞아요.


어린이날 선물은 없었지만 종종 어린이 대공원이나 서울 대공원에 갔었던 기억... 보다는 사진이 있었어요. 지금은 어딘가로 사라져서 보이지 않는 사진이지만 커다란 바위 위에 올라선 첫째 남동생과 형을 따라 기어오르는 둘째 남동생, 그리고 그 애의 허리를 부여잡고 웃고 있는 내 사진.
사진 속 삼 남매는 그 안에서 즐거워하고 있었답니다. 셋 다 어리고 즐거웠던 한때의 사진이 감각처럼 남아 있네요. 비록 그 안에 부모님의 모습은 없었지만요.


막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니까 제가 중학교 3학년이었었죠. 막내가 학교에서 어린이날 선물을 가져왔지만, 전 그때 제 안에 칩거하느라 두 남동생의 존재를 제 안에 들여놓지 못했어요. 아예 인식하지 못하고 지냈다는 방증이죠. 조금씩 건강을 찾은 엄마는 아빠의 사업을 도와 일을 하면서 세 남매를 돌보셨으면서도 제게 도와달라 말씀하신 적이 없어요. 그래서 전 공상하기와 독서에 맘껏 빠져 살 수 있었나 봐요.

엄마와 아빠는 우리 삼 남매를 적절히 사랑하시면서 차별하지 않았어요. 주변 부모님들의 아들 선호 사상이 짙어서 딸들의 희생이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었지만, 전 아빠의 적당한 무관심과 엄마의 일방적 딸 사랑을 먹으며 어린이날 따위가 아쉽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네요.


어린이날 이야기를 하면서 난 이렇게 어린이날도 없는 불쌍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이야기를 끌어내려고 했는데 결국은 그리운 엄마 곁으로 이야기가 흘러왔어요. 그날의 이야기가 제 손을 잡고 돌아올 곳으로 돌아온 것이지요.
그러고 보니 저뿐만 아니라 우리 삼 남매에겐 어린이날은 가끔 가는 놀이공원의 화려한 하루처럼 신기루 같은 것이었네요.

부모님이 모두 안 계신 지금, 이젠 아무도 제 어린 시절을 물어볼 사람이 없어요.

그것만이 제게 아쉬움입니다.
어젠 엄마의 기일이었어요.

엄마의 기일에 어린이날 이야기를 쓰다 보니 자연히 내 기원이 된 부모님이 떠오르네요.

늘 든든한 나의 자존감이 되시던 두 분이 곁에 없지만 분분히 꽃잎 날리는 바람결에, 초록으로 물들어가는 단풍나무 앞에서 가슴이 뜨끈해지는 건 아마도 이 봄에 그분들의 숨결을 마주치는 기쁨이 아닐까요?


그래서 언제나 나는 그분들의 어린 딸로 행복한 봄을 보내고 있나 봅니다.




photo by 캐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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