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동무하기까지

by 캐리소

어른들이 말했다.

시간이 번개처럼 지나간다고.

내가 듣기에 그건 이상한 말이었다.


그들의 시간과 내 시간이 다른가? 하고 의아했다.

긴 고드름이 처마밑에서 뚝 떨어져 동강나버린 것처럼 내 시간과 그들의 시간은 따로 세팅되어 있는 것인가?


그때 나의 시간은 잠이 부족한 나무늘보를 닮았었다. 나무늘보는 원체 무거운 데다가 무엇을 확실하게 보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을 들여 눈을 꿈벅여야 되는 지경이었다.


그래서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느려터진 내 시간을 그들의 번개에 번쩍 올려놓아 함께 날아가게 만들고 싶었다.



영혼의 밑바닥을 긁는 것 같은 신비로운 책 '기적수업'에서는 시간의 목적이 사람들이 시간을 건설적으로 사용하는 법을 배우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시간은 가르침의 도구이자 목적을 이루기 위한 * 수단이라는데 적지 않은 시간을 통과한 나는 어떤 것을 배웠을까.




나는 방황자의 습성을 갖고 있었다.

나의 마음을 다스리고 옳게 사용해야 할 의무 앞에서 눈감아버린 게으름,

부정적 생각에 나를 버려둔 무관심,

새로운 기회 앞에서 오래 머뭇거리는 버릇은

방황을 낳았다.


이러한 나의 습관이 자주적이고 선명한 태도를 지우고 부정적 패턴으로 나를 끌고 들어가는 일이 많았다.

그러므로 시간은 오랜 나의 습관을 기억하고 새겨서 시간의 파편처럼 나라는 인간의 특징과 사고를 만들어버린 것이다.



인간은 지혜를 가지고 태어나진 않지만 생각하는 능력은 가지고 태어난다. 그리고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생각이 익어 지혜의 열매가 되기도 하는 **

근사한 결과를 내게서 지연시켜 버린 것이다.


그러면 나는 지금은 방황하지 않는가?

물론 방황한다.

그러나 방황의 방향이 바뀌었다.

과거의 방황은 나를 더 나로부터 멀리 떼내 무엇을 방황하는지조차 모르게 만든 것이라면, 지금의 방황은 다시 내게로 돌아오기 위한 작은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자발적 노력을 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긍정적으로 사고하기를 시작했고 이 패턴이 내게 낯설지만은 않다. 물론 이 사고를 시작한 건 꽤 되었다. 나보다 큰 힘에게 나를 사용하도록 맡기면서 나는 방황에서 조금 자유로워졌다.

나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자연의 법칙을 이용하고 내 목적을 이루기 위해 타인과 기꺼이 조화롭기로 결심하는 것이 바로 지혜니까.


나는 나의 거대함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나를 좁게 규정해 버리고 목적 없이 방황하도록 버려두지 않는다.

실패와 좌절을 겪어가며 근육이 생기기도 했지만, 또다시 그것이 오더라도 다시 새로워질 마음이 있으므로.


이제 시간은 방황으로 고갈시키는 나무늘보의 허물을 벗고 더 큰 힘이 나를 양성하도록 탄탄함을 갖추고 있다.

번개에 올라타지 않고도 내 리듬과 속도대로 가는 시간과 나는 지금 어깨동무 중이다.



*기적수업, 헬렌 슈크만.

**결국 당신은 이길 것이다, 나폴레온 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