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가 마침내 내 방으로 당도했다.
이제 본격적인 여름인 것이다.
더위는 늘 어딘가에 있었는데 나의 살갗에 닿아 감각으로 느끼는 순간부터 나와 만나게 된 것이다.
이제 맞이한 여름은 작년의 여름과 다르고 재작년의 여름과 다른 여름 일 것이다.
왜냐하면 작년의 나와 재작년의 나, 올해의 나는 같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두 달 전,
거울에서 보았던 나와 지금 거울 속의 내 얼굴은 살짝 달라져 있다. 팔자주름이 더 깊어졌고 중력이 잡아당긴 턱선도 2mm 정도 아래로 내려앉았다.
그러나 나의 내면에 잔근육이 생겼다.
아령운동을 한 것도, 근력 운동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4개월 동안 인문학을 끼고 살며 그걸로 재료를 삼아 글로 만든 음식 덕분이다.
0.1mm씩 생각하는 근육, 생각을 나와 연결하는 근육이 생겼다.
어느 작가님은 홀로 떠난 유럽 여행에서 자신 속에 든 버블을 만나고 마구마구 감동하셨다는데 과연 난 언제쯤 내 속에 버블을 만날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하다가도 사람이 각각 다르니 그분의 버블 같은 깨우침이 내게선 다른 형태로 생성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른다.
그러면서 내 안의 버블이 아직 부풀지 않았고, 고래는 과거에 고여 있는 인식의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르니 좀 더 진중하게 기다려 보기로 한다.
좀 늦으면 어떤가.
그것들은 내 안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니 조바심을 내지는 않으리라.
결국 버블은 뽀골뽀골 밖으로 샐 것이고 잠자던 고래는 하품을 크게 하고 내 안에서 투레질을 할 때가 온다.
사실 어떤 일이든 시큰둥하고 관심 없어했던 나에게 인문학을 만났다는 것 자체가 놀랄 일이긴 하다. 나는 내가 되어 살지 못했기 때문에 신은 나를 이 다이내믹한 인문학으로 밀어 넣으신 건지도 모른다.
좀 알라고,
알아먹으라고,
네가 누구인지 제대로,
그래서 네가 어떤 존재인지 만나라고,
신의 유전자를 갖고 있으나 까막눈이니 더 깊고 넓게 아는 성현들의 글밭으로 나를 떠밀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아우렐리우스에게 맞은 정신이 아직 아물지도 않았는데 쇼펜하우어의 지도봉으로 툭툭 지적당하며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인간의 속성에 대해 여지없이 깨지고 있는 것만 봐도 알겠다.
그러니 맞을만하니 맞을 것이고 (오해 마시길! 어떤 폭행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쯤은 압니다)
지도할만하니 하는 것이니, 나는 잘 맞고 제대로 지도 당하여 내 정신을 바로 세우고, 인간이 무엇인지 알아서 정말 인간답게 살아야겠으니 처맞고 지도 당하는 즐거움이 말이 아니다.
그러면서 새로 움트는 것들 때문에 거북하기도 하고 아프기도 할 테다. 잉태된 것들이 내 안에서 자리 잡아야 하니까 입덧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전에 내게 주입되었던 잘못된 신념이나 고정관념이 녹슨 못처럼 빠져야 하니까.
새로운 정신의 생명이 내게 착상되어 세포분열을 일으키고 또 다른 생명의 형태를 만들어야 하니까.
너저분한 기존의 자리를 깨끗이 청소하고 내어주느라 장기의 이동이 필요하니까.
그래서
이 입덧을 가라앉힐 처방약은
뿐이다.
시간의 경과에 의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을 때를 기다리지 않고 성급히 요구하는 것은 나중에 계산서를 치르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고 삼가야 하겠다.
그저 인문학의 수액요법과 영양요법을 충실히 따르고 사색으로서 적당한 수분 공급을 잊지 않아야겠다.
난 첫째 때 입덧이 슬쩍 지나가고 둘째, 셋째는 입덧을 하지 않았다. 새 생명에 대한 어떤 거부감도 없었던 인체가 참으로 가상하기도 하고 신비롭기도 하다. 그러나 그들을 품고 있던 열 달이 절대 편안하지만은 않았던 기억을 잊지 않는다.
생명은 생명의 값을 하느라 다른 생명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니 내 성장과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는 남다른 준비도 빼먹지 말아야지.
그러기 위해서 단 한 줄이라도,
이 훈련을 기꺼이 이어가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