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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Jan 19. 2024

겁쟁이, 눈물, 낙타, 검은 지중해

크로아티아에서

2023. 10. 25

12층의 거대한 지중해크루즈에서 즐길거리가 없는 나는 새벽부터 육지로 나가기전까지, 다시 배로 돌아와 잠들기 전 모든 시간, 24시간 운영되는 카페에 노트북을 켜고 앉아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


크로아티아에 정박해 한참을 돌아다니다 배로 돌아오니 다들 흥겨운 night time. 나는 1시간정도 눈붙이고 일어나 카페로 이동.


그런데 앞테이블 여성이 운다...여성은 울지만, 어딜 가나 같은 상황인 듯해 나는 (미안하지만) 피식 웃음이 난다.

바로 마주 보이는 저 테이블에서 이태리여성과 남미남성의 울음, 그리고 뒤에 등장한 아랍계여성,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중.


여성은 혼자 울고 있었다. 잠시 뒤 100kg이 족히 넘는 거구의 남미feel나는 남성이 여성의 뒤에서 어깨를 몇 번 주무르자 그녀는 눈을 내리깔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 

나는 딱! 눈치챘다. 싸웠구나!


남성이 여성 앞에 앉자마자 여성의 속사포는 쏟아진다. 이태리어로 쏟아내니 어후! 더 숨가쁘다! 남성이 한마디하기라도 하면 여성의 목소리는 더더욱 높아지고 더 크게 운다. 남잔 어쩔 줄 몰라 하고 여성은 울면서도 계속 말한다. 여성들은 울면서도 할 말 다 한다.     


드레스와 턱시도차림의 남녀들이 쇼핑하며 거니는 크루즈 5층 거리, 한 귀퉁이 카페에서 나는 자고 일어나 검정점퍼 하나 걸치고 노트북들고 앉아있고 앞의 남녀는 울며 싸우고 있고.....우리(?)가 특별한 사람이 되어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다.


남들이 자꾸 쳐다보는 시선에 잠시 고개돌렸다 다시 노트북으로 시선을 옮기는데 옆테이블 여성은 계속 더 크게 운다. 여성이 민감한건지 남성이 용서못할 잘못을 저지른건지... 남들 시선의식하지 않고 큰소리로 울고 싸운다. 갈등은 염치없이 어디서나 튀어나온다. 감정은 눈치없이 어디서나 물불안가린다.


여성과 남성, 동양과 서양, 백인과 흑인, 젊은이와 노인, 아이와 어른,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인간은 모두 이 두 가지 중 하나이거나 가장자리 언저리에 속한다. 그런데 난 아니다. 난 여성의 몸이지만 지나치게 남성적이기도 하고 노인같은 보수와 아이같은 천진난만(철없음)이 그대로 공존한다. 그저 본능대로 드러내며 사는 중이다. 그러지 못했는데 이제는 그렇게 살게 됐다. 나를 드러내는 것에 익숙해진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도 이렇게 내 맘대로, 남들이 쳐다보든 말든 내가 젤 좋아하는 놀이중!      


크로아티아에서 아침은 볼테르와, 저녁은 소로우와.


오늘 크로아티아 SPLIT 거리를 마구 돌아다녔다. 하도 많이 들었던 곳이라 이 거리에 들어서자마자 반나절 정도 맛이 갔었다. 맛이 갔다는 말, 참 재밌다. 이 말은 자체의 맛이 있다는 것나 자체의 맛이 어디로 가버렸거나 자체맛을 잃은 채로 그냥 도시가 주는 느낌 그대로를 호흡하며 돌아다녔다.


이럴 때 나는 어린아이같다. 엄청 빠르게 쫒아다니고 어떤 shop앞에서는 윈도우에 코박고 한참을 서 있다가 내키는 대로 걷고 뛴다. 아무데나 막 간다. 하지만, 평소 관심없는 것들에 즉흥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경향이 거의 없는 나는 이 점에서 상당히 어른스럽다. 그래선지 나는 '충동구매'나 '지름신'과는 거리가 멀다.


한참을 고풍스런 골목골목의 앞뒤위아래로 계속 뺑글뺑글 돌며 다녔다. 이것저것 사먹거나 남들 어쩌나 쳐다보는 일은 거의 없다. 그저 뛰고 걷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냥 그 느낌!!! 느낌이 그대로 내게 담기는 충만함이 너무 좋아서 마구 다녔다. 


아쉬운 것은 한참을 들여다보고 관찰하고 그렇게 내 안에 녹아들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것이 이럴 땐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 여기 보는데 저기가 보고 싶고 저기 보면 또 그 옆이 보고 싶으니 말이다.


아직 돌아다닐 곳이 많은데

아직 여기저기 막 걷고 싶은데..

그렇게 아이만큼 빠르게 걷다가

내 시야에 확 들어온 메인거리와 해변에서

나는 멈췄다.


그렇게..

벤치에 앉아 한참을.. 아주 한참을...

나는 나에게로 푹 빠져 버렸다.   


지중해바다,

짙은 파란색 하늘,

그 컬러에 너무나 어울리는 하얀 구름,

그리고 자유로운 사람들.

그 속에 혼자인 낯선 나....


여기 벤치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나의 버블들과 함께

내 안에서 자유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지금까지의 나라면 이럴 때 눈물이 흘러야 하는데 이번엔 아니다. 내 안에서 부풀어 오르는 버블들이 입과 귀와 코, 나의 모든 구멍으로 빠져나오느라 눈물의 경로를 다 차지한 듯하다.


그 버블들을 하나씩 손으로 잡아 다시 입으로 꿀꺽 삼키기를 반복...

그러다 어느 순간,

겉잡을 수 없이 뿜어져 나오는 버블.....  

나의 꿈이, 희망과 기대와 그리고 혹여 잃고 살았을지도 모를 ‘나’라는 존재에 대한 가치로움이 한없이 터져 나온다. 수많은 버블들이 내 안에서 흘러넘쳐 하늘로 바다로 다시 나에게로.. 그렇게 한참을 나를 중심으로 논다. 


이 글을 쓰는 지금, 화려한 크루즈night 속에서 내게 낮동안 머물다 떠났다 놀았던 버블생각에 눈물이 터지고야 만다.... 계속 가슴에서 풍선이 부풀어 오르는 것을 느낀다. 풍선은 무제한으로 계속 샘솟나보다.     


내 안에 드디어 옹달샘이 생겼나?

결코 마르지 않고 결코 부패되지 않는, 맑은 물방울을 무한정 만들어내는 그런 샘이 드디어 생긴 것인가?

버블이 터지는 벅찬 가슴을 다시 느끼며 눈물이 주루룩 흐르니 옆에 서 있던 남미웨이터가 살짝 미소지며 커피 한잔을 가져다 준다....잔이 넘치도록. 이 순간, 그의 배려는 나에게 방해였으나 넘치는 커피만큼 그의 친절이 고마워 나는 눈물범벅인 눈빛을 교환하며 활짝 웃었다.


만약 나의 삶이 바람빠진 풍선마냥 이 시간, 외로움과 불안,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다면

내 삶은 얼마나 나에게 억울한 표정을 지을까.

내 삶이 알맹이없이 자기를 이 따위로 취급하냐고 얼마나 커다란 원망을 퍼부을까.

내 삶이 자기를 멀리 두려는 나로 인해 얼마나 애가 탈까.


제발 자신을 짊어지고 가달라고,

사랑스럽게, 자랑스럽게 자신을 메고 걸으라고,

힘들더라도 자신을 좀 데려가라고...


나는 너이니,

너만 따로 갈 수 없으니 자기를 팽개치지 말라고,

그러면 너는 네가 아닌 삶을 살게 된다고.


삶이 내지르는 소리가 커다란 진동을 일으키며 내 온세포를 자극한다.

나는 이 소리에 지금 취해 있다.


소리의 진동이 너무 커 내 안의 모든 장기들이 흔들려 파동을 일으키는지

몸속에서 즙이 밀려 나온다.

계속 눈물이 흐르고 조금씩 진땀이 맺히는 걸 보니...


누구나 쉽게 말한다. 삶을 당당히 살아라. 삶을 어깨에 짊어져라. 네 삶은 네가 주체다.라고.

머리로 아는 것은 어린아이같다. 

중요한 것은 가슴으로 그 소리를 들었냐는 것이다!

내 안에서 소리치는 

나와 나의 삶이 나누는 대화를 

들어본 적 있냐는 것이다! 

지금 나는 그 소리에 심취해 있다. 아... 감사한 선물이다!

내 안에서 내지르는 소리가 너무나 커서 이 거대왕국을 울려대는 음악소리마저 휘발시켜버렸다.


오늘 split의 해변가에서 나로부터 터진 수많은 버블들과 한참동안 나눈 대화...


‘나의 삶'이 자기 길을 지키려 애쓰며 가고 있었지만 나는 도망쳤었고 옆길로 샜었고 숨기도 했었고 엉뚱한 곳에서 한참을 놀기도 했었다.

하지만 내 삶이 나의 길을 지켜주었던 것이다.


다시 삶 앞에 불려나온 나는

낙타가 짐을 싣기 위해 무릎을 꿇고 어깨와 등을 내주듯

이제라도 내 삶앞에 놓인 짐을 지기 위해 무릎을 꿇기로 했다.

이런 무력한 나를 삶은 아무런 채근없이

괜찮다고..

그렇게 내가 널 들쳐메고라도 갈테니 가자고...

더 큰 보폭으로 걸으면 된다고, 늦지 않았다고 한다.  

    

누군가는 삶에서 도망친다. 자기 삶을 내팽개치고 남의 삶 속에서 기생한다. 거기서 주는 빵에 길들여져 자기 삶은 어디로 갔는지 행방도 모르고 산다. 그러면서 계속 아쉬워한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라고, 이 나이에 뭘 할 수 있겠냐고, 돈이 없다고, 자식 다 키웠으니 이제 됐다고, 그냥 이렇게 살다 죽으면 된다고....


다들 겁쟁이들이다. 하다못해 붕어빵을 만들더라도 앙꼬가 제대로 들어갔는지, 새지는 않는지, 제대로 맛을 내려 이리저리 뒤집어대는데 자기 삶이 앙꼬없이 흘러가는 것에는 너무나 너그럽다. 그러면서 자기는 어쩔 수 없다는 이유를 근사하게 만들며 산다. 앙꼬의 양이나 맛이 부적절하거나 부족하면 어떤 누구도 붕어빵을 사지 않을텐데 말이다.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


인생도 마찬가지다.

앙꼬없는 삶에 세상은 그 어떤 것도 지불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세상을 무시하면 세상도 날 무시한다. 

내가 세상을 원치 않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내 삶을 원치 않는다는 사실.


뒤늦게 깨닫고서야 

신이시여, 내 삶을 굽어 살펴주소서 빌어보겠지만 

'삶에서 잘못된 방향을 선택하고선 나중에 신이 상황을 바꿔주거나 갑자기 그 방향을 좋게 만들어주리라 기대하는(주1)' 어리석은 인생만 자기 앞에 놓여있음을 무기력하게 바라볼 것이다.      


나는 다시 나의 삶을 등뒤에, 어깨에 단단히 매야겠다.

아니, 무거워도 괜찮으니 내 등에 업히라 무릎꿇어준 내 삶에 업혀서라도 가야겠다.

나는 겁쟁이가 아니니까.



신은 겁쟁이를 통해서는 그 어떤 것도 이루려 하지 않는다에머슨(주2)의 글귀의 의미를 이미 나는 또렷하게 너무 잘 알아버렸다.          


내 삶에 내 꿈을 얼마나 심고 가꾸었는지에 따라 내 인생의 결과는 주어질 것이다. 가다가 어깨가 아프면 고쳐 매고 등이 저리면 잠시 허리를 펴면 되겠지. 나는 겁쟁이가 아니니 이것을 즐겁게 여기겠노라. 한번 허리를 펼 때마다 나는 꿈에 더 다가간 것이고 이쪽에서 저쪽으로 한번 고쳐맬 때마다 내 꿈 새로운 꿈을 견인할 것이다.


그러다 지금처럼 내가 예상못한 어떤 곳, 어떤 시간에 가슴 속에서 몸집을 불리고 증식해버린 버블들이 ‘나’를 뚫고서 또다시 무한정 하늘로, 바다로, 공기 사이로 내 꿈들을 내보낼 것이다.  


내 삶은 결코 싸구려도, 남이 제조한 붕어빵도 아니니 나는 가장 본능적인, 지극히 나다운 그 삶을 일궈내야만 한다. 삶이 고통이라 여기는 것은 삶을 전쟁터로 여기기 때문이다. 나의 삶은 전쟁이 아니다. 낙타는 오로지 목적지만을 바라보며 앞무릎을 꿇고 무거운 짐을 등에 싣는다. 오아시스가 어딨고, 짐이 무겁다고, 사자가 나타날지 모른다고 전쟁터라 여기지 않는다. 그러니 어두운 사막을 걸으면서도 용기가 필요없는 것이다.


용기가 필요없는 삶...

믿음만이 가득한 삶...

더 즐길 요량으로, 더 나눌 몫을 위해, 사이사이 자신이 쉬어갈 오아시스를 믿으며, 당도할 그 곳에서 짐을 내려놓고 가볍게 두 다리를 쭉 펼칠 자신을 상상하며... 그렇게 묵묵히 걷는 것이다. 낙타는 목적지에 도달할 확신으로 가는 길 내내 강한 동기, 역할, 책임만이 필요할 뿐이다.



나의 꿈이 더 단단하고 구체화되는 것이 느껴지는 지금,

내 삶이 도달하고자 하는 그 곳, 

내 꿈이 놓인 그 곳으로

나는 절뚝걸려도, 끌려서라도, 업혀서라도 가야 한다.


혹여 내 꿈이 나에게 실망하여, 나를 포기하여 나를 두고 어딘가로 가버리면 큰일이니까. 그러면 날 들쳐업고 가는 내 삶에 너무 미안하니까. 어떻게든 나의 본능적 욕구에 더 가까워져야만 한다.         


이 세상에 유능한 사람은 너무나 많다. 우주선도 만들고 사람의 세포 속도 들여다보는 세상이다. 하지만 나는 세상에서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그래서 나여야만 하는 그 곳으로 나의 모두를 걸어봐야겠다.


나는 나의 세상을, 나의 삶을, 나의 운명을, 나의 인생을, 그렇게 나를 가장 나답게 건설해야만 하겠다.

위대한 건설사업의 유일한 전문가는 세상에 나 한사람뿐이다.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소홀히 다뤄지거나 타인의 것보다 미뤄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나의 삶을 위해 유한한 시간과 무한한 대자연이 존재한다.

모든 지원이 풍족한 나의 하루에서 우선순위는

내 삶을 건설하는 것임을,

이것만이 나의 업(業)임을 명심해야 한다.


나는 지금 카페에서 혼자 눈물을 줄줄 흘리며 낮부터 내게서 범람하는 버블에 쌓여 이 글을 쓰고 있다.

그 사이, 옆테이블의 여성은 울음을 그쳤고 이제는 거구의 남자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심하게 운다.

자정이 넘은 이 시간, 카페엔 우리 셋밖에 없는데 셋 다 울고 있다.

우연인가?


아.. 그런데..

남자의 눈물은... 아... 맘이 약해지는데... 가서 안아줄 수도 없고...


지금 여기 시간으로 새벽 1:51분.

11층 선상에 올라야겠다.

내게서 난리 난 버블들을 검은 지중해에 뿌려줘야겠다.


(pause)


선상에 올라 밖을 보니 까만세상...

크루즈는 하얀포물을 일으키며 또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다.

나의 삶도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주1> 톨스토이,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 2007, 위즈덤하우스

주2> 랄프왈도에머슨, 자기신뢰철학, 2020, 동서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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