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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리소 Apr 13. 2023

그나저나, 내 상처는 어떡할 건데?

찜찜한 스팀과 바늘로 뜬 아픔에 대해서



딸이 하나도 궁금하지가 않았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자동 재생되면서 떠오르는 노래. 장기하의 '부럽지가 않어'라는 노래다. 웃기는 노래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부러운 게 많으면 속내를 감추고 저런 반어적인 노래를 만들었을까 싶었다. 이 노래처럼 내게도 내가 알지 못하는 숨겨진 이유가 있는 것일까? 그 생각의 발로로 궁금하지가 않은 걸까?


결혼을 한 딸의 안부와 손자들의 안부가 궁금할  법도 한데 내가 먼저 전화하는 경우는 없었다. 그래서 더욱 나의 행동에 숨겨진 이유가 있지 않을까 의심이 갔다.

딸에게 묘한 거리감과 어색함을 느꼈다. 사위와 머리 맞대고 앉아서 딸 욕을 할지언정 딸과는 그 농도가 되지 않았다. 그런 내가 당황스러웠다. 내가 낳은 내 딸이 아닌가. 비록 성향이 하늘과 땅처럼 다르다지만 하늘도 땅이 있어야 서로 마주 보고 꽃 한 송이나 새싹 하나라도 피울 것이 아닌가.

서로 속내를 다 드러내지 않고 비껴 앉은 사이라서 이렇게 어색한 걸까?





일찍 결혼해서 저를 낳았으니 사춘기와 갱년기가 맞짱 뜨는 시기도 아니었다. 뒤늦게 막내 동생이 들어선 걸 알고 나서 둘째는 신기하다며 환영했지만 첫째는 더 사나운 사춘기를 보여주었다.

심리적인 산전수전 후 몇 년이 지나고 적당히 서로 늙었을 때, 딸은 내게 섭섭했던 일들을 빼빼로 빼먹듯 하나하나 기억해 냈다.

학원을 마치고 집에 온 첫째가 화장실에 앉아 있을 때, 그 사실을 모르고 집에 온 내가 칸쵸(버섯 모양의 초코과자) 를 사 왔는데 자기 몫을 빼놓고 둘째 것만 사 왔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지금도 칸쵸만 보면 울분 버튼이 된다고 했다.

또 자기와 둘이 미술학원에 상담을 하러 갔을 때, 자기가 급해서 소변 실수를 했는데 내가 신문지를 던져주며 그걸로 가리고 따라오라고 했다는 이야기는 듣는 나도 생소해서 깜짝 놀랐다. 같은 학원에서 난 선생님으로 근무하고 딸은 학생으로 다닐 때 자기를 보고도 다정하게 대해주지 않은 것. 사실 애써 떠올려봐도 내 기억에는 없지만 당한 사람은 구체적인 장소나 분위기까지 기억난다고 하니 두 손 들 수밖에 없지 않은가. 딸의 이야기를 들으면 난 천하에 차갑고 매몰차고 자비 없는 엄마였다. 아무리 그런 마음이 아니었다고 손사래를 쳐도 아이가 그때 느꼈던 마음의 색들을 지울 수는 없겠지. 그저 순순히 미안했다고, 용서해 달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또

"괜찮아, 그때 엄마도 어렸는데 뭘 알았겠어?"

하며 삐질삐질 땀 흘리는 엄마 앞에서 갑의 여유를 부리기도 한다. 고마웠다. 질투의 여신이었던 예전처럼 샐쭉거리지도 않고 넉넉하게 엄마의 잘못을 넘기는 여유라니.

그러면 됐다고 생각했다. 잘못한 거 용서 빌고 용서받으면 된 거 아닌가. 우리에겐 손바닥 탁탁 털어 이젠 남은 게 없지 않은가.

싶었으나 아니었다.




그 후 오랫동안 가슴 밑바닥에서 뭔가 스산한 게 올라온다. 딸이 아이들 키우면서 서툰 살림 하느라, 직장 다니느라 발에 땀나듯 뛰어다녀도 안쓰럽다는 생각이 다였다. 어린 손자들보다 내 아들과 딸들이 더 귀하다고 느꼈지만 더 나아가지 않았다. 결승선이 저 멀리 있는데 중간에서 멈칫하고 있는 것처럼 뭔가 찜찜한 스팀이 계속 올라오는 것이다. 더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려는 마음속 무의식이 의식됐다.

이게 뭐지?

아무리 생각해도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과거를 복기하던 중에 가장 아프고 힘들었던 때가 떠올랐다. 상황이 안 좋아진 남편은 생활비를 주지 못할 때가 많았고 나는 어린 아들 때문에 직장도 시간제로밖에 나갈 수가 없었다. 한참 눈 흘기며 꾸역꾸역 학교에 다니던 큰딸은 잊을만하면 학교로부터 호출 거리를 만들었다. 어렵게 시작한 딸과의 상담치료는 어떤 효과도 보이지 않은 채 더디고 아프게 매일의 과정을 지나고 있었다.

그때 가슴에 비늘 뜨듯이 상처가 새겨졌나 보다.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대체 왜 그러는데?
네가 그러고도 자식이야?



눈두덩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가슴이 꽉 막혀 있었지만 어디에라도 쏟아놓지 못한 것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시간이 지나 잊힌 듯했지만 그대로 화석이 되어 차갑게 가슴에 새겨지고 바람으로 자란 것 같았다. 이 상처 덩어리가 빙하 속에 단단히 박혀 있다가도 또 어떤 천재지변으로 뒤엎어질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이라도 달려가 그때 내 마음이 그랬노라고, 너 때문에 사는 게 세배로 힘들었다고, 너도 내게 사과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눈 똑바로 보고 얘기하고 싶다. 그러나 막상 얼굴을 보면 저 철없는 아이에게 또다시 상처를 주게 될까 봐 주저하게 된다. 어릴 때 내가 딸에게 주었던 상처와 그때의 딸이 내게 주었던 상처가 혜안 없는 두 여자의 어리석은 헛발질이 아니었나 싶다.

서로를 향해 있지만 결국은 내게 가해지는 타격.

다시 그런 헛발질로 서로를, 사실은 나 자신을 다치게 하고 싶지가 않았다.

곰곰 생각해 보면 내 상처를 해결할 수 있는 타인은 없다. 그렇다고 한편으로 치워 놓고 다독다독 덮어두고 싶지도 않다. 

이 상처를 거울삼아 비슷한 일로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을 더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되고 싶다. 그러다 보면 언제고 좋은 때가 오면 딸에게 내 상처를 편안하고 담백하게 꺼내놓을 수도 있을지 누가 아는가. 어쩌면 그럴 때 이런 상처쯤은 아주 가벼워져서 커피 한 잔이나 케이크 한 조각의 농도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홀짝 한 모금, 달랑 한 포크 떠 넣을 수 있겠지? 그럴 땐 꽃씨처럼 날리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호호 웃을 수도 있으리라.


그럴 날이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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