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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리소 Apr 10. 2023

비빔밥 같은 두 여자 이야기


엄마는 2020년 햇살이 내리쬐는 꽃바람 속 날 좋은 4월에 돌아가셨다.
그다음 해 4월에 둘째 딸과 함께 여행하게 되었다. 여행의 컨셉은 '엄마를 위로하라' 란다.


친정엄마가 돌아가신 지 딱 일 년이 되는 날이었다. 나보다 더 내 딸들의 사랑과 지지를 받았던 엄마를 잃고 떨어지는 꽃처럼 마음이 떠돌았다.
둘째는 바쁜 중에도 외할머니 기일 즈음에 제 엄마와의 짧은 여행을 계획했다. 그 마음이 좋아서 따라나섰다. 친정엄마가 사시던 양수리는 바람과 공기마저도 엄마 살냄새가 섞인 것 같아서 얼씬도 하고 싶지 않았다. 둘이 머리를 맞댄 궁리 끝에 비빔밥의 진수를 맛보자 해서 여행지를 전주로 정했다.

전주는 외가 식구 중에 유일하게 살아 계시는 외숙모가 사시는 곳이다. 예전에는 가까이 살아 자주 얼굴 보며 지냈지만, 전주로 이사 가고 나서는 통 만나지 못했다. 둘째와 나는 전주가 처음이었고 여행 내내 둘째는 외할머니를 그리면서도 내 마음을 살피느라 분주했다. 커피가 맛있는 카페나 전망이 좋은 호텔, 잠시라도 뭔가 집중할 거리를 주겠다고 도자기 체험도 준비했다. 또 하나, 전주에 사시는 외숙모 할머니를 만나는 이벤트까지.

엄마와 외숙모는 자매 같은 시누이올케 사이였다. 엄마는 외동딸이라 기본값으로 외로움을 많이 탔다. 우리가 서울에 살 때 해남에 살던 외사촌들이 우리 집에 머물며 학업이든 직장이든 병원 진료든 신세를 진 일이 많았다. 그런 엄마와 외숙모는 많은 부분을 나누며 살았다. 나중에는 외삼촌 내외와 그 가족이 서울로 이사를 와서 지내며 당신의 자녀들 사정도 우리 사정도 모두 알고 서로 기도해 줄 정도로 허심탄회하게 지내셨다. 외삼촌과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엔 더욱 두 분이 서로를 의지했다.

전주에 가자마자 비빔밥 식당으로 찾아갔다. 소박한 기본 상차림에 반찬으로 나오는 육회가 생경하고 놀라웠다. 평소에 난 생고기는 먹지 않지만, 여행도 여행이고 비빔밥의 진수를 맛보러 와서까지 취향을 고집하지 말자며 한 점 맛본다. 부드럽고 신선하고 고소한 맛이다. 한 입 씹으니 바로 녹아버리는 마술. 곧이어 유기그릇에 담아져 나오는 비빔밥이 정갈하다. 갖가지 야채와 나물의 조화가 함부로 비벼지는 게 아니라 격조 있게 어우러진다고 해야 할까.
엄마와 외숙모의 사이처럼 다정하고 깊은 맛이 난다.
식사를 마치고 미리 연락해 놓은 동갑 사촌에게 전화했다. 외숙모 얼굴이라도 뵈어야 할 것 같아 선물이랑 외숙모와 조카들 몫의 용돈도 준비했다. 준비하면서 내 가슴이 그득해지는 마음이었다. 어릴 땐 아무것도 해드린 적이 없지만 이렇게 용돈이라도 드릴 수 있으니 갑자기 내가 어른이 돼버린 것 같은 기분이다.
외숙모는 많이 쇠약해지셨고, 그렇지 않아도 마르신 양반이 더 홀쭉해진 것 같았다.
우리 둘째를 안고 반가워하셔서 바라보는 내 눈가가 뜨거워지기도 했다. 찻잔을 사이에 두고 이 얘기 저 얘기 나눌 이야기도 많았다. 그래도 외숙모가 환자시니 너무 지치실까 봐 한두 시간 만에 가겠다고 하자 많이 아쉬워하며 이젠 얼굴 못 볼 것 같다고, 마지막일 것 같다고 하면서 우셨다. 외숙모가 어린 아기가 된 것처럼 안타깝고 눈물이 났지만 참는다. 나도 대답은 아니라고 다시 만나자고 했지만, 속으론 또 언제 뵙겠냐는 마음이 가득했다.





그게 이곳에서 만난 외숙모의 마지막 모습이다. 외숙모는 올해 2월에 평안히 잠드셨다. 그러고 보니 3년 전 엄마 장례식에서 뵙고 외숙모를 뵌 건 그다음 해가 마지막이었네.
엄마도 외숙모도 연세가 드시고 병을 얻어 우리 곁을 떠나셨다. 가족으로서 슬픈 일이고 맘이 아프지만 그게 또 사람의 일인지라 피할 수 없다는 걸 안다. 누구도 그 진실 앞에서 부인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니까. 이젠 두 분이 기쁘게 만나셨겠지?
서로 조화롭게 어우러진 비빔밥처럼 서로의 인생을 맛있게 버무렸던 엄마와 외숙모는 그곳에서도 평소처럼 반갑게 얼싸안았을 거라 믿는다. 봄 냄새 풍기는 이 계절에 엄마와 외숙모에 대한 그리움이 고소한 한 방울의 참기름처럼 이 봄 위에 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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