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화에서 자잘한 선을 많이 쓰라.
얇고 두껍게, 진하고 연하게.
대상에 색을 입힐 때 무거운 색과 가벼운 색을 조화 있게 같이 사용하라.
며칠 전 엄마가 네 친구의 화실에 가서 수업하면서 그 애에게 들은 말이야. 엄마의 그림 터치에 유용한 말들을 추려봤는데 이 말이 생각나네.
근데 이 말은 엄마가 다니는 공방 선생님께도 동일하게 들은 얘기란다. 워딩은 같고 내용도 같은데 엄마의 귀를 통해 마음으로 전달되고 감정에 남은 내용은 너무 다르네.
도대체 무엇이 다른 것일까?
이유는 여러 가지일 수 있겠지. 두 사람의 전달 방식이나 말투가 엄마에게 다가오는 느낌이 달랐어. 그런데 그건 신뢰감이나 친밀성의 문제는 아니야. 네 친구보다는 공방 선생님이 더 엄마와 친밀하거든. 하지만 진정성에서는 조금 다르더라. 네 친구의 말이 더 진정성 있게 들리더라고. 두 사람 다 전문성에 면에선 믿을만한 사람들인데 친구의 말이 엄마의 그림에 꼭 필요한 팁이라고 느껴졌거든.
그리고 수강생들의 그림을 그리는 태도가 진지했던 화실과, 그림을 소소한 취미로 참여하는 중년 수강생들의 공방은 그림 앞에서의 태도가 다른 느낌이었어. 그래서 환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말없이 몰입하는 수강생들을 지도하는 네 친구의 모습에서 조용한 포스를 보았으니까.
아마도 그로 인해 그 애의 피드백이 더 진실하게 다가왔을 거야. 결국, 감정, 그리고 엄마가 느끼는 특별함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조언을 받아들이는 마음에 차이를 만들어낸 것이겠지.
지금 그리고 있는 그림에도 새로운 시각과 영감을 불어넣고 싶어졌고 그런 면에서 여러 가지 느낌을 갖게 되었어.
결국, 그림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마음의 표현이니까.
마음은 일정한 목표가 없으면 갈피를 잡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말처럼, 사방에 있다는 것은 아무 곳에도 있지 않다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 나는 무엇을 아는가, 몽테뉴.
어쩐지 목표가 더 선명해지는 시간이었다고 할까?
어떻게 다가가야 할 지, 그리고 내 포지션은 어딘지 한번 더 들여다 본 것 같았단다. 사실 이런 사소하고 작은 차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그만큼 엄마가 이 작업에 관심 이상의 흥미가 있다는 거야. 하지만 방법을 찾지는 않으려고. 마음을 쏟고 있는 것은 방법까지 장착이 되어 있으니 엄마는 좋은 결과물이 올 거라는 믿음으로 그냥 그리기로 했어.
딸,
네가 미술 선생님인 친구와 연결해 준 원데이 클래스 덕분에 엄마는 그림에 대한 새로운 페이지의 한 부분을 경험했어.
정말 고맙다.
그림이 참 우리 일상과 닮아 있더라. 그런 면에서 친구의 조언은 영혼이 우리에게 내민 초대장 같더라고.
자잘한 선이 우리 일상에 필요한 윤곽을 만들듯이.
변화가 없는 듯 변화무쌍한 우리의 감정에 얇게, 두껍게, 진하고 연하게 질감을 넣듯이.
대상에 무거운 색과 가벼운 색을 조화와 균형으로 입히듯이.
그렇게 일상도 그림처럼 꾸려가려고.
삶에 대한 창조적 태도로 말야.
엄마는 글 쓰고 너는 일하고 우리 퍽 단순한 삶을 살고 있지만 꿈을 향한 자맥질은 단순하지 않잖아.
그러니 너도 지금의 네 삶에 다가온 새로운 기회를 네 색으로 그려보길 바라.
그럴 때 이건 싫고, 이건 좋고 이렇게 갈라놓지 말고 그 일이 네게 보여줄 것이 있어서 왔다고 여기고 일단 시작해 봐. 그리고 네게 주는 메시지를 잘 들어 봐. 그러면 메시지를 수용하고 해석하는 너를 통해 네가 어떤 사람인지 섬세하게 알아가게 될 거야. 그렇게 해서 본질을 발견하면 어디로 향해야 할지 더 선명하게 알게 되거든. 너의 길이 더욱 뚜렷해지면 선택의 순간마다 자신감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게 돼.
아, 엄마 잔소리 스톱!!!
스스로도 충분히 잘하는 딸에게 또 꼰대력을 발휘했네. 미안.
엄마나 잘할게. 안녕.